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Mar 19. 2024

담대하고 의연하게는 개뿔

입원하려면 적어 내야 할 게 참으로 많다.  

A4용지 몇 장을 빠르게 읽고 '아니요'에 동그라미를 친다.  

나의 인적사항과 기저질환 유무에 대해 적는다. 

친절한 직원에게 출입증 목걸이를 받고 성형외과 병동 7층으로 올라간다. 

병동에 올라가서 어리둥절해 있으니 오늘 입원하는 분이시냐며,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친절하게 간호사가 물었다.


입원하기 전부터 신랑에게 1인실에 입원하고 싶다고 했다. 

입원 전부터 뾰족해 있던 마음은 1인실에 꽂혔다. 이 정도 호사는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모바일로 입원실을 예약할 수 있었다. 역시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1인실은 예약은 모두 끝났다고 했다. 

할 수 없이 2인실 배정받았고 1인실 빠지기만 하면 옮긴다며 신랑에게 어깃장을 놓았다. 

간호사님이 갈아입을 병원복을 갖다주셨다. 화장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이 영락없는 환자였다.

내 옷을 입고 왔을 때는 환자같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옷하나로 이렇게 달라지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 슬펐다.  

오라는 시간까지 왔지만 하는 거 없이 앉아만 있었다. 

신랑이랑 휴게실에 들어가서 코코아 한잔을 마셨다. 달달한 게 들어가니 기분이 좀 나아진다. 

입원하는 당일부터 밥이 제공된다고 했다. 오랜만에 식판에 담긴 밥 먹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목 빠지게 기다렸던 저녁밥이 나와 한 숟가락 먹으려고 하는데 

마취과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여러 명의 환자들과 같이 전신마취에 관해 설명을 듣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데 기막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수술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지 더 두려웠다. 

차라리 알면 좀 나았으려나.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전신마취에 대한 설명 듣고 사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 다 무효야. 이건 꿈이라고.' 하며 벌떡 일어나고 싶은데 지금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병동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쳐 앉아 다 식은 저녁밥을 먹었다. 전신마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니 입맛이 달아났다.

식판을 두고 오고 이번엔 성형외과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다. 

성형외과로 걸어가는 길에 신랑에게 

"어차피 벌어진 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담대하고 의연하게 할 거야."

라고 했다. 나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아무도 없는 외래 보는 진료실로 갔다. 전공의 되는 분이 사진촬영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가슴사진을 찍는 거라고 했다. 초음파도 아니고 엑스레이도 아니고 사진기로 남자 의사가 나의 가슴의 다각도로 찍어댔다. 병원복을 그들 앞에서 벗을 때부터 나는 여자가 아니고 많고 많은 유방암 환자일 뿐이다. 

사진을 찍고 진료실로 불려 들어갔다. 수술의 부작용에 관한 설명을 한다고 했다.  

환자가 궁금하게 없게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2차 수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왼쪽 가슴 성형은 2차 수술때 하기로 한다고 했다. 

나의 경우 방사선 치료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나 혹시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횟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는데 귀를 막고 싶었다.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약한 환자일 뿐

담대하고 의연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감정을 다 드러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진료실을 걸어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소리 없이 흘렸던 눈물은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흐느낌으로 바뀌어 아무도 없는 복도를 울렸다. 

"의사는 원래 최악의 말하잖아. 괜찮을 거야. 잘될 거야." 하며 신랑이 등을 두들겨줬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무섭다고 했다. 무서워죽겠다고 했다. 잘 안되면 2차 수술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울었다. 

울고 내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도 같이 울며 내 말만 듣고 끊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담대와 의연이라는 것은 나와는 맞지 다짐이었다.


병동으로 돌아오니 다른 환자가 들어와 있었다. 

소등하기 전 코를 심하게 고는 신랑이 귀마개를 드렸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커튼을 치고 있어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서로 잘 될 거라고 응원했다. 



나는 환자 침대에 누워있고 신랑은 간이침대에 누웠다.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뾰족했던 마음은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신랑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도 얼마나 걱정될까 싶기도 했다. 

"오빠,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미안하면 수술 잘 받고 나오기나 해."

"만약에 나 2차 수술하게 되면 어쩌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아픈 것도 무섭고 부작용도 무서워. 

피부괴사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흑흑...."

옆 환자에게 시끄러울까 봐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1인실 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정말 최악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은 잘도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