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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27. 2024

평범한 나의 일상의 찾아서

할머님이 새벽에 잠이 잘 안 오는지 왔다 갔다 하는 소리와, 며느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잠을 잘 못 잤다. 

새벽 5시 다시 새날이 밝았다. 내 이름을 부르며 간호사님이 들어온다.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고 발에 꽂은 약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는데 피가 역류해 있었다.

주사 꽂은 날짜를 확인하더니 

"다른 곳에 다시 찔러야겠어요."

"저 왼쪽 가슴 수술 안 했으니깐 왼쪽 팔에 주사 놔주시면 안돼요?"

"아직 팔에 주사 놔드리면 절대 안돼요. 팔 혈관 조심해야 해요."

또다시 발에 주사를 꽂는다고 생각하니깐 온몸이 덜덜 떨렸다. 확실히 아는 게 더 무서운 것 같다. 

간호사님께서  "제가 하다 안되면 발 전문가 선생님 불러드릴게요." 하셨다. 

'이 간호사님 말고 전문가 선생님한테 내 몸을 맡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 없으면... 다른 선생님..."라고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다행히 간호사님은 못 들은 것 같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하며 "선생님 제발 한 번에 잘 부탁드려요." 했다. 

"오빠... 나 손 좀 잡아줘." 눈을 꼭 감고 신랑의 손을 세게 꽉 잡았다. 

 다행히 한 번에 잘 들어갔다. 저번에 놨던 주사는 전신마취도 해야 해서 바늘이 두꺼웠지만 

지금 놓는 주사 바늘은 훨씬 얇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저번 주사보다는 괜찮았다.


"잘 들어가네요. 쉬세요."하고 나갔다.  

"간호사 선생님도  긴장되나 보더라. 실수 없이 하려고 여러 번 확인하고 꽂더라고. 한 번에 안 아프게 해 주려고 신중하게 놓더라."라고 신랑이 말해주는데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될 수 있으면 덜 아프고 싶은 내 마음과 될 수 있으면 덜 아프게 해 주려는 간호사의 마음이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오전 7시 드레싱 해주시는 전공의 분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다. 

오늘은 눈을 뜨고 내 가슴을 살펴봤다.  비현실적이었다. 

참담 그 자체다.


회복을 위해 복도로 걸으러 나간다.

"나 오늘에야 가슴 수술한 거 봤어. 징그럽더라. 오빠는 내 가슴 보고 어땠어?"

"안쓰럽단 생각이 들었지"

"징그러웠던 건 아니야? 정 떨어진 거 아니야?"

"어떤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겠어. 더 잘해줘야지. 생각했지..."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신랑과 복도를 돌다 달달한 코코아 한잔을 나눠 마신다. 

부부는 정말 어떤 인연으로 맺어지는 걸까.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다. 

보고 싶은 우리 딸. 눈물을 참으려 애써본다. 

"이봐, 엄마 안 죽었어. 하반신 마비도 안 됐다고."

"어 그러네."

"가윤아 너무 보고 싶어. 잘 지내고 있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딸에게 보여주는 게 싫다. 

"또 전화할게." 짧은 통화를 마친다. 


점심 먹고 친구들과 통화도 할 겸 복도를 걷는다. 

괜찮지 않은 상황을 또다시 이 친구, 저 친구에게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친구들도 함께 운다. 울지 말라고 하는데 내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흑흑"거리며 복도를 돌고 돌아 통화를 마치고 들어왔다.

"나는 네가 7층 귀신인 줄 알았잖아. 누가 하두 흑흑거려서. 나가봤더니 너잖아."

라고 신랑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머리도 며칠 못 감았지 울어서 눈은 계속 빨갛지 하얀 병원복 입고 다니지 그래, 맞다. 귀신이 따로 없다.

이상하게 복도에 우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신랑은 내가 이해 안 된다고 했다.

매일 몸이 좋아지고 있는데 왜 우냐고 묻는다. 다 끝났는데 이제 그만 울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맨날 운다. 이야기하다 울고, 통화하다 울고, 혼자 생각하다 운다. 

내가 제일 갖고 싶다 덤덤하고 의연하고 강한 마음을  말이다.


이제 신랑은 집으로 가야 한다. 아이를 더 오래 떨어뜨려놓을 수가 없다. 

이제 나 혼자 생활해야 한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무서운 건 떨리고 무서울 때  손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 

강한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식판을 휴게실까지 가져가는 건데 그것이 가장 큰 숙제이다. 

하지만 천천히 해보니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부러운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똑똑한 사람, 예쁜 사람, 잘난 사람등  온 천지가 부러웠다. 

아프고 나서 보니 두 발로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부럽다. 

친구가 물었다. 퇴원하면 뭐가 제일 하고 싶냐고 

"깨끗하게 샤워하고 주사기 없는 자유로운 몸으로 내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어."

평범한 나의 일상이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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