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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29. 2024

퇴원하는 날


집에 오면 엄마가 머리 감겨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머리를 숙이기가  불편할 것 같아 퇴원 하루 전에 동네 단골 미용실에 전화해 본다.

"혹시 머리만 감는 거 예약할 수 있나요?"

"그럼요. 이번엔 시술이 아니고 샴푸만 하시려고요?"

원장님 의아하게 묻는다. 

"제가... 유방암에 걸려서 내일 퇴원하는데 머리를 좀 며칠 못 감아서..."

"아... 시간 언제로 잡아드릴까요? 아무 때나 오세요."라고 했다. 


퇴원하기 전날 밤 

"할머니한테 장조림이랑 김밥 먹고 싶다고 이야기 좀 해줘." 딸에게 카톡을 보냈었다.

집에 가면 엄마표 김밥이랑 장조림이 먹고 싶었다.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엄마네  바로 간다. 

"가윤아!" 보고 싶었던  내 딸. 

꽉 안고 싶지만 가슴 때문에 안을 수가 없다. "잘 있었어? 엄마가 너 보고 싶었어 죽는 줄 알았어."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언제나 차분하고 시크한 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이리보고 저리 보기만 한다.

엄마와 아빠가 뛰어나온다. "기다렸어. "하며 엄마가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고생 많았다. 고생했어... "아버지가 목이 메어 더 말을 못 하신다. 

"얼른 와. 김밥이랑 장조림 먹고 싶었다며 엄마가 해놨어."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안에 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진하게 났다.

김밥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뒀는지 쟁반에 산더미까지 쌓여있다. 

엄마가 싸주는 김밥의 특유의 맛이 있다. 집집마다 김장김치의 맛이 있듯 김밥 맛도 다 다르다. 

우리 엄마 김밥은 특이한 재료가 들어간다기보다는 야채보다 밥이 많이 들어있다. 밥의 간이 잘 맞아서 별 재료가 안 들어가도 참 맛있다. 엄마는 옆에서 김밥을 썬다. 동그라미 꽃들이 도마에 하나씩 피어오른다. 

식탁에 둘러앉아 정다운 김밥을 식구들과 나눠먹는다. 


밥을 먹고 딸과 함께 미용실에 같이 간다고 나왔다. 

"엄마, 내가 선물을 하고 싶어."

"어머나. 정말?"

"커피 좋아하잖아. 저기 커피숍에서 바닐라라떼가 얼마 정도 하지?"

하며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개를 꺼내면서 손바닥을 펼쳐 보여준다. 

귀엽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안 사줘도 괜찮아. 안 먹어도 지금이 너무 행복해."

퇴원한 엄마에게 선물 사줘야지 하는 그 마음은 뭘까? 

위로해 주는 마음일까. 축하의 마음일까. 반가움의 마음일까. 

우리 둘은 손을 꼭 잡고 미용실로 걸어간다. 보드라운 딸의 손을 잡으니 행복해 미치겠다.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건 고역인 것 같다. 


머리를 며칠 못 감아서 감겨달라고 들이밀기가 미안할 정도다. 

"머리를 감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됐어요."

"뭐 어때요. 이런 거 하려고 우리 미용사가 있는 거죠. 편안하게 샴푸 받으시면 돼요."

시원하게 머리 감고 따뜻하게 머리까지 말렸다. 

드라이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으로 항암치료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제 손님 중에도 항암치료 하시는 분 2명 정도 있어요."

"머리 날 때 좀 숱이 많아진다거나 머리 결이 좀 좋아지기도 하나요?"

"처음에 머리 날 때는 좀 부슬부슬하게 난다고 해야 하나요?"

"제 머리가 곱슬이잖아요. 혹시 머리 다시 나오면 생머리로 나오나 싶어서...

다음 주에 조직검사 최종결과 나오거든요. 항암치료받는다는 결과 나오면 머리 밀러 올게요. 

만약 아니라면 염색 예약할게요."

"항암은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예약 전화 기다릴게요."

머리만 감았는데 샤워를 한 듯 몸이 가벼웠다.


드레싱에 필요한 소독약을 사러 동네 약국에 들어간다. 

"생리식염수 좀 사려고요."

약사님이 "누가 아파요?" 라며 걱정되는 듯 물어보셨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가던 집 앞 약국이라 너무 익숙한 곳이다.

"제가... 유방암이라 소독 좀 해야 해서요. 오늘 퇴원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우리 내일 밤까지 문 여니 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와요." 하셨다. 

(설 연휴 시작날이었다.)

동네 미용실도 약국도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 해주신다. 

그런 말들이 참 고맙다. 


오후가 돼서야 우리 집에 왔다. 

내 침대, 폭신한 이불 따뜻한 소파

퇴원하기 전에 선물이라고 신랑이 준비해 준 비데까지 

완벽하다. 오늘밤부터는 새벽에 안부 묻는 사람 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없이 

자고 싶은 만큼 꿀잠 잘 수 있을 것 같다.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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