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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01. 2024

인생공부 중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신랑에게 제일 먼저 전화한다. 

"나 항암 안 해도 된데 흑흑..."

"이제 마음 좀 편하게 지내."

엄마는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한다. 

집에 도착하니 타이밍도 좋게 지인들의 마음이 도착해 있었다. 

"회복에 소고기만큼 좋은 게 없데." 하면서 고기를 많이 보내주셨다.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웃으면서 사랑의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프고 나서 보니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생활이 외롭지 않게 계속 전화해 주고 그 전화 열심히 받아야 해서 복도를 미친 듯이 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구의 종말이 언제쯤 올까 울며 불며 하는 날들 중에 

반가운 담해 북스 대표님의 카톡이 왔다. 

(담해 북스 대표님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

"작가님.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실 수 있다고 해서요." 하며 큰마음을 보내주셨다. 

이 마음을 또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유치원에서 함께 일하는 부장님이 얼른 회복하라고 비타민을 보내주셨다. 

일 욕심이 많아 유치원 영양사로도 근무하고 있는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는지 유치원 모든 선생님들이 따뜻한 응원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 중 특히 원장님께 감사하다.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 조건 없이 통 크게 휴가를 내주셨다.

사회생활에서 '아무 조건 없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경우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게 미안해 그만두겠다는 나를 붙잡고 

"여긴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선생님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돼요."

라는 말이 나에게는 정말 힘이 됐다. 얼른 회복해서 원장님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는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술 후에는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았을 적에는 평범한 하루 보낸 나 자신이 미웠다. 

시간을 쪼개 살지 않는 내 모습에 한심했다. 

바쁘지 않으면 불안했고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행복했다. 

지금은 매일의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출근 압박 없는 아침이 행복하고 

아침 먹고 낮잠 자는 시간이 행복하고

아이 학원 보내고 산책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이젠 머리도 감고 싶을 때 감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팔이 아파 집안일을 많이 할 수 없는데 신랑과 아이가 많이 도와줘서 잘 해내고 있다. 

신랑이 회사 다녀와서 집안일 전담해 주고, 아이가 내 머리 드라이도 해주고 딸기도 씻어준다. 

아이에게 많은 짐을 주는 게 아닐까 마음이 무거웠다. 절대 아이에게는 도움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가며 해결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 눈이 왔는데 눈이 오는 창밖을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보았다. 

창밖을 멍하니 보는 내 모습을 내가 보기에도 낯설었지만 

시간을 여유롭게 쓰고 있는 나를 보니 참 행복했다.

병에 걸리고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모두 다 잃어버린 것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

행복을 더 진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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