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Mar 31. 2024

수술 후 첫 외래

퇴원 후 유방암 센터 첫 외래 가는 날이다.

시간을 맞춰서 갔는데 (아니 그보다 일찍) 진료가 늦어지더니 예약시간보다 1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병원은 매번 이렇게 자기들 마음대로다. 하지만 불평불만 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오라고 하면 간다. 내 생각 따윈 모두 배재되는 대단한 곳이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저번에 아는 언니가 선물 해준 커피쿠폰을 쓴다. 

꽤 단 커피와 티라미수 커피세트였다. 커피를 들고 이층 대기실로 올라가 이름이 언제 불릴까 슬쩍 보면서 

커피를 엄마와 나눠 마신다. "엄마 케이크는 먹지 말고 선생님 선물로 드리자. " "그래. 여기서 먹기도 좀 그렇긴 하네."

수술은 끝났고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들으러 온 것인데 내가 블로그를 통해 알아낸 유방암 치료방법은 항암과 방사선치료 그리고 호르몬제약 등이 있다. 

가슴을 모두 전절제 하더라도 항암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항암은 없이 방사선 치료만 하는 분들도 있었다. 

아주 좋은 경우는 항암, 방사선, 호르몬제약이 전혀 필요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암이 어떻게 되어 있었냐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 달라서 주치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3가지가 다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큰 욕심이다. 항암만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의자가 앉았다 일어났다, 다리를 덜덜 떨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반복이다. 

간호사가 보험사에 필요한 서류를 적어달라고 했다. 

각각 보험사에 전화해 필요한 서류들의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20대 때 아는 사람들이 들어달라고 했던 암보험이었는데 암이라는 건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이 암보험을 40대에 타 먹는다. 건강할 때는 몰랐던 내 보험 약관을 들여다본다. 실비 보험 안에도 여성암이 특약으로 들어있었다. 인생은 참 모른다.

보험까지 다 했지만 대기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엄마, 나 진짜 진료실 못 들어가겠어. 엄마만 들어가서 나 안 왔다고 해. 엄마가 선생님 말 듣고 와서 나한테 말해줘, 나 너무 무서워."

엄마가 웃으면서 "의사가 우리 바보 모녀로 볼 거야. 괜찮아. 항암 안 할 건데. 하게 되더라도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여기 사람들 봐봐. 다 이겨내고 있잖아."

하며 땀으로 흠뻑 젖은 손을 잡아줬다. 엄마 손을 잡고 있어도 떨리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송미정 님은 진료실 바로 앞에서 대기해 주세요."라는 방송이 나왔다.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고 진짜 송미정이 맞는지 확인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따라 들어가면서부터 떨리는 마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어, 왜 울어요, 큰 수술도 잘해놓고 왜 울어요. 암은 다들 처음이라 마음이 힘들어요. 진정해요. 진정해."

내가 제일 진정하고 싶다. 이렇게 많은 의사들 간호사들 앞에서 바보처럼 울고 싶지 않다. 

"자, 수술을 하고 보니깐 0기에서 1기로 올라갔아요. 앞으로 치료는 약으로 할 거예요. 

호르몬제를 처방해 줄 거니깐 열심히 먹어요."라고 말씀하셨다

"1기가 됐다고요? 그럼.."

"유두 쪽에 보니깐 침윤암이 발견되었어요. "

"저는 그럼... 어떻게...."

"우리 딸 항암도 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엄마가 물었다.

"다행히도 항암은 없어요. 방사선치료도 없고요."

이 말에 나도 모르게 주치의 선생님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내가 울든 말든 이어 말했다. 

"0.1m로 아주 미세하게 침윤되어 있어서 항암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환자분은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우는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항암 없다고 빨리 말해줄걸 그랬네. "하며 티슈를 뽑아주시면 말씀하셨다.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 엄마가 "우리 딸 수술 하느라 애쓰셨어요. 별거 아니고 밑에서 케이크 좀 샀어요. 간식으로 드세요." 하면서 드렸다. 흔쾌히 받아주셔서 기분 좋았다. 


오늘이 긴장된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잤다. 

만일을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나는 또 감정을 다 드러내고 말았다. 


외래를 마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어떤 분이 몇 기냐고 물었다. 

하두 울고 있으니 걱정이 됐나 보다. 

"전 1기래요."

"항암치료 해야 한데요?"

"항암은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

"세상에 잘됐다. 그럼 괜찮아요. 너무 잘됐다."처음 보는 나에게 잘되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나는 2기인데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항암치료 다 끝냈어요. 그래서 머리가 이래."

하면서 머리를 보이며 웃는 그 얼굴이 예뻤다. 

울지 말고 힘내라고 말해주는 유방암 선배님 뒷모습이 멋져 보였다. 아파보지 않은 의사를 모를 것이다. 

환자의 진정한 마음을 말이다.


오늘도 유방암의 작은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았지만 

질질 울면서 하나씩 넘어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달라진 명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