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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18. 2024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보면 아직도 내 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암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2020년 그쯤의 사진을 보면 갑자기 울컥한다. 그러면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애송이'라고 사진 속에 나에게 혼잣말을 한다. 

불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기가 막힌 기분'에 매일 울었다. 혼자 있으면 그놈의 자기 연민에 빠져서 눈물이 많이 났다. 나 스스로가 불쌍해서 어쩔 줄 몰랐던 것 같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멍했다가 화났다가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다가 고통에 휩싸이고 현실을 부정하고 (입원기간 중에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지구종말을 단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기가 막힌 심정이 이어지다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내가 암이라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몸 사리면서 있는다고? 이 황금 같은 시기에?' 기가 막힌 그 기분은 아직도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 


전화를 하고 싶은데 내 상태가 어떨지 몰라서 안부전화 하기가 꺼려진다고 들었다. 전화로 말 잘못해 괜히 마음의 상처 주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크다고 들었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나도 전화를 자주 못하는 이유는 활기참과 명랑함을 끌어올려서 통화를 해야 하는 게 조금 힘이 든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 오랜만에 회사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리장님~ 저예요!"라고 텐션을 끌어올린다. 

"어머어머 영양사님~ 얼마만이예요. 가까이 사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 내가 요즘에 괜히 좀 바쁘네."

"일 하면 당연히 시간 내기 힘들죠."

"우리 바쁘지만 5월에는 봐요. 보고 싶어서 그래."라고 하셨다. 

나는 만나고 싶다고 전화한 게 아닌데 조리장님이 오해하시는 것 같았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조리장님께 부담 주는 안부 전화는 안 했을 것이다. 


산책 가는 길에  자유학년제 수업 간다는 카톡을 봤다. 그 문자를 보고 '아 지금 시기가 자유학년제 하던 시기였지.' 싶었다. '자유학년제'라는 단어에 수업하던 건강하던 내가 생각이 났다. 꽤 열심히 살던 시기였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바둥거렸고 나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자만에 빠져있기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참 행복했다 싶다. 아이들과 복작거리면서 스파게티 만들어보고 수업이 끝나면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요리 수업은 뒷정리도 있어서 끝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발바닥에 불나게 뒷정리하고 딸아이 올 시간에 맞춰  후다닥 눈썹이 휘날리게 돌아간다. 아이가 와도 미처 하지 못한 영양사 업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침에도 일찍 나가느라 등교하는 것도 챙기지 못했는데 미안함이 쌓인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아이에게도 교육이 될 거라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 많은 강의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수십 장의 이력서를 밤새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양사로는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철이 되면 봄꽃 비빔밥이라고 해서 식용꽃 넣어서 푸짐하게 제공했을 것이다.계란프라이 차가우면 맛없다고 즉석에서 바로 구워드리며 억척을 떨었을것이다. 나보다는 늘 고객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을 하면서 일했다. 잘해보려고, 인정받으려고 말이다. 욕심이 많아 사회에서의 많은 역할, 집에서의 내 역할을 꾸역꾸역 해내며 살아갔을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 넓은 평수로 이사 갔을 것이다. 나의 추진력으로 욕심으로 어붙었을것이다. 넓은 집에 행복하고 살고 있을까? 아마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남편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행복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입원 기간 중에도 놓지 못했던  블로그 키우는 일에도 더욱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나고 보니 이 많은 일은 어떻게 하며 살았지 싶다. 


암에 걸리고 나니 매일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 그동안 쌓여있던 빚을 탕감하는 심정이다. 그리고 집의 평수로 내 인생이 불행하지 않았다. 유방암 환우의 글을 보면 대출금 때문에 나가는 고정비용이 많아서 다시 출근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암에 걸리고 나니 물질 보다 내실이 소중해졌다. 근사한 집에 병마와 싸우는 가족이 있는 게 아니고 좀 오래됐지만 평범한 아파트에서 건강한 가족들이 지내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소중해졌다는 것이다. 나를 이렇게 사랑한 적이 있나 싶다. 요즘은 나의 기분과 컨디션을 내가 잘 챙겨야 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내가 있고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고, 내가 죽으면 금은보화도 다 소용없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혹부리 영감의 도깨비가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로또 번호, 돈, 명예 그런 거 말고 건강을 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학창 시절로 돌아가 공부 열심히 해보겠다고 한다는데 암에 걸리기전의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은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있으면 타고 싶다. 학창 시절처럼 먼 과거로도 데려다 달라고 안 할 것이다. 딱 6개월 전으로 암에 걸리지 않았던 건강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몸에 칼자국이 없는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엎어진 김에 유방암으로 책도 써보고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를 위해 신선한 재료로 음식도 천천히 만든다. 도서관에 가서 맘껏 책도 보고 시간을 자유롭게 쓴다. 남편과 싸우면서 내가 그렇게 찾았던 '행복'이 이제야 뭔지 알 것 같다. 지금을 무의미한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내공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재충전을 시간을 만들고 싶다. 도깨비도 없고 타임머신이 없다는 것도 안다. 과거는 잊고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것도 잘 안다. 

왠지 모르게 오늘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날인 것 같다. 아 왔구나.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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