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May 15. 2024

탱글탱글 젤리맛 청포묵무침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주 가는 갈빗집이 있다. 갈비가 나오기 전 밑반찬이 나오는데 그중 청포묵무침은 입 짧은 우리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다. 갈비 말고 청포묵무침을 3번이나 리필해 먹곤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유치원에서도 청포묵무침은 자주 제공하는 반찬 중에 하나이다. 아이들이 왜 청포묵무침이라는 음식을 좋아할까 생각해 보면 맛보다는 식감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느끼기에 청포묵이 젤리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먹어보면 고소한 참기름 향이 덤으로 들어오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내가 본 요즘 아이들은 맛도 중요하지만 식감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음식이 딱딱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물컹해도 안된다. 까다로운 고객님들이다.

조리장님께서 청포묵무침을 만들면서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청포묵이 지금보다 훨씬 쫀득했는데 요즘 나오는 청포묵은 그런 식감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하시며 아쉽다고 했다. 그런데 나도 단 한 번도 쫀뜩한 청포묵은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산업체 영양사로도 오래 일을 했는데 고물가 시대에 단가에 맞는 반찬을 하기 힘들다. 그럴 때 자주 나가던 반찬이 도토리묵무침이나 청포묵무침이다. 도토리묵무침은 하다못해 김치라도 썰어 무쳐야 한다. 하지만 청포묵무침은 그보다는 훨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가성비 좋다고 자주 제공을 하다 보니 일인량이 많이 줄어들었고 비선호 반찬이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청포묵무침은 김가루를 이용해서 참기름 넣고 무치기만 하면 끝이다. 

'오늘 저녁 반찬은 뭐해먹나' 고민하다 마트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청포묵 하나 집었다. 집 앞 마트에서는 청포묵 국산이 없어 그게 좀 아쉽다. 사실 청포묵무침도 무치는 게 여러 방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김가루와 참기름을 넣는 방법도 있겠지만 숙주와 미나리를 삶아서 무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숙주와 미나리 삶아서 무치는 청포묵무침이 훨씬 맛있는 것 같다. 미나리의 향긋한 향까지 더해서 더 맛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 딸은 미나리와 같은 초록색 나물을 보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진짜 알레르기가 아니라 먹기 녹색 나물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오히려 좋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청포묵은 100g 기준 35kcal 밖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평생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사는 나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청포묵무침은 청포묵만 잘 삶아주면 요리의 절반 이상을 한것이다. 청포묵은 이렇게 처음에는 불투명이다. 먹기 좋게 썰어준다. 묵칼같은건 없기 때문에 내 맘대로 썬다. 길쭉하게 썰었지만 깍둑모양으로 썰어줘도 된다. 

썰어둔 청포묵을 끊는물에 넣고 요정도로 투명해지면 다 삶아진 것이다. 

물기가 없도록 채반에 잠시 놓아준다. 무쳐줄 때 물기가 많으면 개인적으로 좀 별로다. 

멋을 좀 내볼까 한다. 바로 지단을 만들어 섞어주려고 한다. 지단까지는 굳이 넣지 않아도 좋지만 색감 때문에 나는 뽐을 좀 내봤다. 다음으로는 양념을 해줄 차례이다. 

간장, 참기름, 김가루, 지단, 통깨를 넣고 버물리면 청포묵무침은 완성이다. 

이탈리아에 트러플오일이 있듯 한식에 참기름을 넣으면 음식이 배로 맛있어지는 효과가 있는것 같다. 

음식은 입으로 코로 눈으로 먹는것이 맞는것 같다. 

주부들은 매일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저녁 반찬 뭐 해 먹지?"일 것이다. 

글 쓰기 또한 마감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글이 써지는 것처럼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저녁시간이 되면 풀리지 않던 숙제가 풀리면서 또 한 번의 밥상이 차려진다.

가족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밀려있는 설거지도 싫지 않을만큼 요리가 좋다.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매일 밥상을 차릴 수 있는 것 같다. 별 거 아니지만 방금 한 음식은 참 맛있는 것 같다. 특히나 청포묵무침은 더 그런 것 같다. 청포묵무침이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맛은 100%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청포묵무침은 욕심내서 많이 만들면 안된다. 

작은 청포묵을 사서 딱 한번 먹을 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 요리의 큰 팁이다. 사실 사람들은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에 요리의 꿀팁들을 많이 적는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읽는 구독자들에게 꿀팁을 드리고 싶다. (사실 이렇게 적고 보니 꿀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매일 밥을 하는 것처럼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밥 먹는 건 어렵지 않은데 글 쓰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쓰다 보면 타자기의 손이 피아노 치는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는 걸 느끼고 있을 땐 걸작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내일은 또 무슨 글을 쓴담?'이라고 걱정스럽지만 노트북을 여는 순간 나의 손은 기계적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기계적으로 밥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보카도 샌드위치 어렵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