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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y 30. 2024

D-14일-모든 게 잘 될 것이다.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고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아침이다.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성스럽게 아침을 먹는다. 

따뜻한 보리차를 준비해 천천히 한잔 마시고 사과를 깨끗하게 씻어 먹기 좋게 썰고 사과와 함께 먹을 땅콩잼을 덜어 준비한다. 전날 씻어둔 블루베리 한 줌과 당근 반쪽을 먹기 좋게 썰어둔다. 그리고 천천히 씹어 먹는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과 좋아하는 라디오를 들으며 천천히 아침을 먹다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이 평온을 깨는 전화가 울린다.  영양사 할 때 아침에 전화 오는 걸 극도로 무서워했었다. 

영양사를 그만둔 지 꽤 됐음에도 아침에 전화가 오면 마음이 불안하다. 

'아침에 누구지?' 하며 두려운 마음에 번호를 살펴봤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지만 익숙한 숫자들이다. 

"여보세요?"라고 하니 "여기 00 병원입니다 송미정 님 맞으시죠?"라고 했다. 

00 병원이라는 소리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떨리는 목소리로 " 네 , 맞는데요."라고 했다. 

"성형외과인데요. 6월 12일 날 수술 하는 거 맞죠?"라고 물었다. "네,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변경돼서 전화 주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수술 변경이 아니고요, 수술 전에 하는 검사가 있는데 수술이 2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검사를 안 하셔서 수술 안 하기로 하신 건가 해서 전화드렸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아... 저는 그런 검사한다는 이야기 못 들었는데."라고 했다. 간호사는 답답하다는 듯 "설명 다 드렸고 종이에 써서 파일에 담아 드렸는데 혹시 그 파일 갖고 계시나요?"라고 말했다. 

'파일'이라는 단어에서 설명 들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맞다. 설명 들었었다.' "아, 네 기억나요."라고 했다. 간호사는 다시 차분하게 내일까지는 꼭 오셔서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알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 중요한 사항을 잊고 있었다니.'라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 파일은 차에 놔두었다.  얼른 주차된 차로 내려가 파일을 챙겨 왔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무슨 검사를 받는지 자세히 적혀있었다. 

두 시간 금식하고 검사하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 일찍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갔다. 병원은 역시나 아픈 사람이 많고 복잡했다. 

수납을 하고 영상촬영실 대기표를 뽑고 역시나 가운으로 갈아입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며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옆으로 머리가 다 빠지고 얼굴엔 고통이라고 적힌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환자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게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 꾹 참았다. 아무래도 가운을 입고 있으니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다. 가운이 잘 못했다. 기다리는 중에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수술하기 전 검사 하러 병원 왔어."라고 보냈더니. 친구 한 명이 "미정이 오늘 무섭고 불안하겠다."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내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 때문에 이차 눈물 발발 경고가 울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물을 또 한 번 꾹 참았다. 이름이 불리고 엑스레이 촬영과 심전도 검사까지 마쳤다. 모두 친절한 선생님들 덕에 편안하게 검사했다. 이제 마지막 두 가지 검사만 남았다. 

피검사와 소변검사. 

전광판에 내 이름이 나왔다. 피 뽑으러 동그란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내 한숨을 듣고는 선생님께서 "무서우세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 피 뽑는 건 여러 번 하는데도 매번 무섭네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눈물이 날 정도록 무서우셨구나. 제가 특별히 송미정 님을 위해 안 아프게 주사 놔드릴게요."라고 하셨다. 그 따뜻한 말에 눈물이 봉인해제 되었다. 

그런데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피를 뽑는 동안 선생님께서 "제가 마음 편히 주사 맞는 팁을 드릴게요."라고 하셨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주사 맞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집중해 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훨씬 편해지실 거예요. 내쉬는 숨에 더 집중해 보세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사 맞으면서 쓰러지시는 분들도 있어요. 환자분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당연히 울 수 있어요. 괜찮아요."라고 위로해 주셨다.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놔주는 능력도 대단하고 환자의 마음까지도 편하게 해 주셔서 병원에서 또 한 번 큰 감동을 받았다. 선생님은 아실까? 그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수술 전 검사를 마치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끝나 근처 커피숍에서 가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기분전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수술까지 이주밖에 안 남았다니... 머리를 감으려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면 일차 수술했던 날이 떠오른다. 저번 수술에서도 아무 일 없이 수술이 잘 끝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주치의 선생님이 "이번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했던 말을 떨리지만 믿어보려고 한다. 

다 잘될 것이다. 다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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