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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Jul 17. 2024

항암밥상 좀 먹어볼까?

비가 지겹게도 오는 날들이다.

비가 안 오면 지겹게 덥고 비가 오면 습해서 미칠 것 같다. 아침부터 밖이 깜깜해지면 꼭 지구의 종말이 올 것만 같다. 깜깜해진 하늘처럼 감정도 저절로 차분해진다. 그러고보면 여름은 상상만으로만 좋은 것 같다. 뜨거운 햇살에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그 상상.

상상 속에서만 시원하다.

바다로 뛰어들어가기까지 얼마나 귀찮은 게 많을까.

게다가 바닷속에서 나왔을 때 그 찝찝함은 또 어떡할 건가. 하긴, 이젠 바다로 뛰어 들어가라고 해도 몸을 사릴 나이가 되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먹으려 노력하는 자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도 건강에 좋은 과일과 채소를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고 손에 물 묻는 게 싫지만 찬물을 확~ 하고 틀어 식재료들을 물에 씻는다.

요즘엔 항암에 좋은 음식들을 찾는다.

내가 항암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나에게 적용할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암은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자만하던 시기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행복하기도 하다. 커리어가 멈추는 건 억울하고 몸의 변화가 아주 많이 속상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수술한 지 얼마 안돼서 불편한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건 아주 슬픈 일이다. 비 올 때 회사 갈 걱정하지 않아 행복하고, 초복을 잊을 만큼 평화로운 여름이 행복하고 하고 싶었지만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을 도장 깨기처럼 해낼 때 무지 행복하다. 쓰고 보니 슬프고 속상한 일보다 행복한 일이 훨씬 많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아이 학교에 보내고 아침 먹는 시간이다.

원래는 사과, 토마토, 블루베리를 먹을 만큼 준비해서 접시에 담는데 냉장고에 두부가 조금 남아 있어서

두부와 토마토 계란을 이용해서 볶음 요리를 만들어 볼 것이다.

영양가적으로는 완벽한 음식인 것 같다. 토마토를 볶아 먹는 자체가 좀 맘에 안 들지만 토마토는 기름에 볶아 먹어야 라이코펜의 흡수가 훨씬 잘되기 때문에 오늘은 볶아 먹을 것이다.

제일 먼저 계란과 두부, 토마토를 먹기 좋게 썰어준다.

두부를 노릇하게 구워준다. 연두부 같은 식감은 싫기 때문에 아주 바짝 구워준다.

바짝 구운 두부 위에 풀어둔 계란을 부어서 스크램블에그처럼 섞어준다.

두부는 그냥 구운 것보다 계란물 묻은 두부가 훨씬 맛있다. 그리고 그 옆에 올리브유를 더 부어 토마토를 구워준다.

저당 굴소스, 케첩, 저염간장을 넣어서 만든 소스를 부어 빠르게 볶아내면 요리는 끝이다.

요즘은 소스도 저염, 혹은 저당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좋은 세상인 것 같다.

저염간장이라고 해서 구입해 봤는데 내 입에는 좀 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드는 저염간장처럼 맛있지는 않은 것 같다. 우하하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굴소스에 케첩 간장이 들어갔기 때문에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뜨거운 토마토가 킹받긴 하지만, 몸에 좋으니 두부와 함께 씹어본다.

파슬리가루까지 흩뿌려 놓으니 멋진 요리가 된 것 같다. 오늘도 나를 위해 건강한 음식을 해 먹었다. 별건 아니지만 나를 대접해 주는 느낌이 들어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다음에 또 해먹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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