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계획형 인간
고등학생때 나는 대학생이 되면 연인과 함께 스키장에서 겨울을 보내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스키를 타기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지도 알지 못했고
내가 모쏠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될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던 때의 로망.
부모가 되고나선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되면 놀이공원 연간회원권을 끊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로망도 있었는데, 여차저차 그 로망은 이루지 못했다.
결혼 10주년엔 해외여행을 하고,
여름 휴가는 호캉스로 보내고,
거실엔 TV없이 책장으로 꾸미고,
가족이 같은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로망도 있었다.
가슴 속에 로망 하나 없이 산다면
너무 팍팍한 삶일테니까
이루지 못하더라도 로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말입니다.
문득 내가 가슴에 품은 건 로망이 아니라 계획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 지키지 못한 자책감 따윈 느끼지 않는 나란 인간.
계획이 없으면 사는게 무의미 하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계획형 인간.
나에게 로망은 뜬구름이었기에 저렇게 많은 로망 가운데 이룬게 단 하나도 없나보다.
계획 세우는 데서 이미 절반의 즐거움을 느꼈기에
이루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는 나.
나는 로망보다는 로망이 주는 계획에 큰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또 다시 머릿속에서 로망을 끄집어본다.
비키니를 입겠다는 로망은 2022년 1월 1일엔 바뀐 앞자리로 새해를 맞자는 계획을 세우게 하고,
널찍하고 휑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를 위해 책을 읽고 버리자는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우며 이미 난 절반의 행복을 경험했고 실현이 주는 기쁨 따윈 궁금하지 않게 됐다.
이쯤되니 계획형 인간이 아닌 실천형 인간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실천형 인간이 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