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포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94.

명절 전에 회포 한번 풀자던 친구녀석과

회도 포도 아닌 삼겹살을 먹고 난 다음 날은 고민할 일 없이

우거지 해장국을 시킬 일이다

기름진 고기의 끝음을 극적으로 흥얼거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고기맛보다 탱글한 선지 덩어리와

우거지의 풍악이 살릴 일이니,

김장에서 내몰린 배춧잎을 삶아 강쇠바람과 해님을 조우시키고

된장, 쌀뜬물, 멸치까지 가가호호 비법의 국물 맛을 살려

먹거리 장터에서 한소끔 더 끓여내면 진국이다

우거지는 겨울에 제맛,

봄이 오고 시래기가 밥상의 질서를 엎어버리기 전에

알싸하고 칼칼한 맛을, 내리는 눈 바라보며 희맑게 넘길 일이다

해장국 중에 최고로 겸손한 우거짓국은

섣달그믐이 한 해 마지막 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처럼 맛있고,

그보다 더 개운하고 담백하게 끝내야 옳은 일이다.

懷抱 210mmX135mm, Line Drawing on Paper(Croquis Book),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