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그때도 나는 그 생각에 매달렸다 12.
연일 후덥지근한 날씨로 체감온도는 30도를 웃도는데
삶은 면에 뜨거운 멸치국물을 붓고 그 위에 호박나물과 청양고추를 다져서 만든 다대기를 얹어 크게 한 입 먹던 오늘 점심에 갑자기 네가 생각났다.
아마 너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 오래전이었지?
온통 누더기가 된 나라꼴처럼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한참 서교동 신촌 신수동을 싸돌아다녔을 때
우린 뜨거운 칼국수를 먹으며 전두환을 미워했고 야학을 내보낸 교회 측에 반발했었지
삐걱거리던 교회 골마루에 서서 선물로 받은 나일론 양말을 들고 학생들과 헤어지며 흘렸던 눈물.
휴교령에 수배령 그리고 통금 여관방으로 이어지던 기억에
아끼던 선배 그림을 헐값에 네다 팔고는 공덕시장 이모네에서 돼지곱창에 막걸리를 시켜놓고 호기를 부리던 그때를
지난주 C형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너를 만났다고 센터빌은 좋은 곳이더라고 좋으면 뭘 하나 널 볼 수 없는데 우리의 그때는 너와 함께 하는데 우리는 국수를 먹으며 우리가 걸을 앞날을 예감했었고 '빵'의 고른 분배도 얘기했었지
오후 6시 애국가와 함께 시작되던 들끓던 함성, 독재자는 가고 그렇게 꽃피는 봄이 시작될 때 우리는 학우들 주머니를 털어 동대문에서 끊어온 무명천을 체육관에 깔아놓고 오윤 형 목판화를 페인트로 모사하며 구호를 덧붙이고 미래를 기대했었다.
지나간 시간과 결별하고 싶었지만 역사는 연속되는 것.
군입대 영장도 없이 강제징집이 되기 전까지 차고를 개조한 작업실에 숨어 절망의 새날을 맞이하곤 했지. 겨울 오면 봄 또한 멀지 않다는 셸리의 싯구를 되새겨가며 햇빛을 잃어 어둠이 너무 길었던 그 해 여름에 뜨거운 칼국수를 먹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친구야! 떠나기 사나흘 전인가? 밤새 술 마시고 평창동 후배 작업실 마당에 묘목으로 심었던 그 배롱나무에 요즘 백일홍 꽃이 한창이란다. 올 연말에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버지니아에 갈 일이 생길 거 같은데 그때를 기대해 보련?
시간 420mmX135mm, Watercolor on Paper(Croquis Book)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