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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짓국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1

by 어떤 생각



김장에서 밀려난 배춧잎들만 골라

노근노근하게 열탕찜 시키고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꺼내

보였다 말다 하는 햇살과

된바람에 맡긴다


겨울은 우거지가 제맛,

봄이 오고 시래기가 밥상의 판도를

엎어버리기 전에

구수하고 칼칼한 그 맛을

칼바람 맞으며 뜨겁게 넘길 일이다


쌀뜨물에 된장을 푼 뒤

다진 마늘에 대파까지 송송 넣은

가가호호 비법의 육수정도면

낙원동 맛집도 안 부러운

진정한 진국이다


밥보다 술이 더 좋아

언제나 배고픈 예술가의 해장국은

한 끼 그것이 산해진미요

세상에서 가장 맛나고

배부른 밥일 것이니


우거짓국이야말로

속푸는 음식 중에 최고로 겸손하되

고추가루 몇스푼에도

감칠맛나게 화려해지는

해장의 예술이다




밥상의 그리움, 2023, Mixed media, 290mmX30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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