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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노동자 May 26. 2023

스위스의 인플레이션은 3%

스위스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높은 물가와 이자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인플레이션은 쉽게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23년 3월 인플레이션은 4.24%로 다른 나라보다는 좋은 상황이나 목표 수준인 2%로 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의 최근 4년간 인플레이션 수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수많은 나라와 달리 서부 유럽에 있는 스위스는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29년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율인 3.5%를 2022년 8월에 기록했습니다. 스위스 기준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율이지만 인플레이션율 10%를 넘겼었던 영국 및 유로존에 비교하면 매우 안정된 수치입니다. 




스위스가 안정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는 이유는?


1. 이미 높은 물가


스위스의 1인당 국민 소득은 76,000 USD로 현재 환율을 적용했을 때 1억 원 수준입니다. 2021년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34,940 USD로 4,641만 원 수준입니다. 평균적으로 한국인 대비 스위스인은 2배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높은 소득에 걸맞게 스위스는 모든 것이 비싼 나라입니다. 제가 6년 전 스위스에서 먹은 버거킹 세트는 2만 5,000원일 정도로 비쌌습니다. EIU에 따르면 스위스를 대표하는 취리히, 제네바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가를 가진 도시 6위와 7위로 조사됩니다.


스위스의 물가가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채소와 고기 등 식품 가격이 크게 올라도 인플레이션에 비교적 작은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햄버거의 재료인 양상추와 패티 가격이 1,000원 상승했습니다. 한국의 버거킹 햄버거 가격은 10,000원에서 11,000원으로 10% 상승했습니다. 이에 반해, 스위스의 버거킹 햄버거 가격은 25,000원에서 26,000원으로 4% 상승했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같이 올라도 Base 되는 가격 자체가 높기 때문에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전체 소비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

스위스인은 전반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전체 소비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처럼 높지 않습니다. 가계 전체 소비지출 중 식료품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엥겔지수를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19년~2021년 기준 주요국의 엥겔지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위스의 엥겔지수는 못 찾았지만 독일과 영국보다 낮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9년~2021년 엥겔지수]

일본 15.4% → 16.3%

한국 11.4% → 12.8%

독일 10.8% → 11.8%

영국 8.1% → 9.3%

미국 6.3% → 6.7%


안타깝게도 5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2019년~2021년 사이 엥겔지수가 1.4%p로 가장 많이 상승했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021년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은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었습니다. 스위스의 엥겔지수는 다른 나라보다 낮기 때문에 식료품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했습니다.


3. 강한 자국 화폐, 프랑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으로 자금을 이동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타국의 화폐 가치는 하락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미국 달러 대비 엔화(일본), 파운드화(영국), 위안화(중국), 유로화(유럽)의 화폐 가치는 크게 하락하였으나, 스위스 프랑의 변동성은 낮았습니다. 


스위스 프랑 가치가 강세인 이유는 투자자가 스위스 프랑을 미국 달러만큼 안전하다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정부는 금(Gold), 안전 채권, 다양한 금융 자산 등으로 스위스 프랑의 가치를 받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부가 충분한 안전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프랑의 가치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 프랑의 강세는 수입 물품의 가격을 하락시킵니다. 예들 들어보겠습니다. 스위스는 바나나를 베트남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동 대비 프랑의 가치가 10% 상승할 경우, 베트남 동 기준으로 바나나 가격이 같더라도 프랑으로 지불하는 스위스인은 10% 싸게 바나나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낮아진 수입품 가격은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스위스 프랑의 강세는 스위스가 수출하는 물건을 비싸게 만들어 무역 수지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가 수출하는 물품은 가격 탄력성 낮습니다. 즉,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 물건입니다. 스위스의 대표적 수출품은 롤렉스 시계, 값비싼 초콜릿 등이 있습니다. 이런 물품의 소비자는 가격이 올라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4. 공기업의 에너지 산업 운영, 관리 / 원자력 에너지


올해 우리나라는 난방비가 폭등하여 주요 뉴스에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2배 이상 오른 난방비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진 에너지 위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급자족을 하지 못하는 나라에 공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아래 2022년 에너지 가격 상승 그래프를 보면, 스위스는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독일 대비 에너지 가격 상승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사된 유럽 국가 중 프랑스와 스위스는 가장 낮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공통점은 에너지 믹스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이 비교적 높다는 것입니다. 

스위스 에너지 믹스 : 원자력 에너지 비중 20%, 수력 14%

프랑스 에너지 믹스 : 원자력 에너지 비중 74%

스위스 에너지 믹스


프랑스 에너지 믹스

안정적인 에너지 발전원이 있기 때문에 석유와 석탄 에너지 가격 상승을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유럽 국가와 달리 스위스는 에너지 관련 공기업을 민영화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산업을 민영화한 유럽 국가는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공기업이 에너지 산업을 관리·운영하는 스위스는 안정적인 에너지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5. 소비자 식품 가격 통제 

스위스 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한 가격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2022년 EuroStat의 조사에 따르면 스위스는 30%의 제품에 대해 가격 통제를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가격 통제를 강력하게 할수록 기업은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습니다. 스위스 정부의 적극적 가격 통제에 따라 스위스는 식품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15% 이상의 식품 가격 인상을 기록한 독일, 영국, 네덜란드와 달리 스위스는 4%대의 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의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관리 사례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스위스가 낮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할 수 있는 이유 중 아래 3개 사항에 대해 집중해 보겠습니다.


강한 자국 화폐

공기관의 에너지 산업 관리

소비자 식품 가격 통제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 중 하나지만 100% 시장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정 섹터와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국 화폐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금(Gold), 채권 등 안정 자산에 투자하여 자국 화폐인 프랑의 가치를 받치고 있습니다. 


또한, 스위스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주장한 공기업 민영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산업은 여전히 공기업이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고의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있음에도 20%의 에너지를 원자력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육성하고 관리·감독해야 하는 산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위스 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가격 통제를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물가를 관리했으며 취약 계층을 보호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과 통제·관리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정책 목표에 대한 근거없이 이념과 감정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정책은 시장 경제 체제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책의 좋고 나쁨은 의도가 아닌 결과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 원자력 에너지 폐기, 기본소득 등의 정부 정책은 결과를 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봐야 합니다. 결국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정책 분석을 통해 정부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시장 실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할 때 위기의 대한민국은 비로소 선진국에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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