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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29. 2022

노숙 청년 지미(Jimmy) 이야기

-임순 씨의 힘겨운 하루

복지부에서 노숙인 위한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환자를 데리고 오는 날은 병원이 뒤숭숭하다. 약물에 취해서 이상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일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미는 공터의 누가 버려둔 소파에서 마약에 취한 채  쓰러져 누워있었다고 한다. 거의 이틀 동안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이상해서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고 그의 심각한 건강 상태를 확인한  복지부 직원이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든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같았다. 마치 몸을 숨기려는 작은 곤충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리고 있었다.

 부스스하고 긴 장발 머리는 뒤엉켜 있었고 초점이 없는 눈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검은 때가 낀 얼굴도 검댕이에 가려져 있었지만 창백함이 느껴졌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 위험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복지부 직원이 그에게 뭐라고 말하자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 겹겹이 껴입은 옷은 땟국이 줄줄 흘러 너무나 더러웠고 냄새 또한 고약했다.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그를 씻겨야 하는데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는 AIDS 환자였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 에이즈 환자에 대해 부정적인 때였고 병이 옮을까 두려워서인지  그를 씻기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에이즈를 무서운 병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를 씻긴다는 것은 목숨 거는 용기를 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서 누구든 나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철저하게 예방하느라 마스크와 안경, 두 겹의 라텍스 장갑을 끼고 샤워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땟국에 절은 겹겹이 입은 그의 옷을 벗기자 그는 약에 취한 상태에서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피하며 부끄러워했다.

옷을 벗기자 그의 다리에 난 상처가 참혹하게 드러났다. 허벅지 살 일부분이 썩어 구더기가 꼬여 있었다.

놀라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가볍게 등을 후려치며

“엄마 뻘이야. 부끄러워할 거 없어. 많이 아팠지? 잘 씻고 치료를 하자.”며 그를 달랬다. 한참을 씻겨도 검은 땟국 계속 흘러나왔다.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나가자 온순하고 말간 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피부에는 여러 상처들이 있었지만 얼굴은 깨끗했다. 갈색의  맑고 큰 눈을 가진  잘 생긴 젊은이였다.

이렇게 잘 생기고 온순한 젊은이가 약에 찌든 채 병에 걸린 몸으로 노숙 생활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약에서 조금 깬 그는 멍한 채 시키는 대로 잘 따라 주었다. 우선 허벅지의  상처를 소독해주고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큰 거울로 데려가서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거울 속의 네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봐. 이렇게 아름다운 젊은 몸도 보렴. 네가 너를 사랑하고 돌보고 아껴야지.” 하며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자 그는 말없이 거울을 보며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치료를 마친 후 그가 병원을 나설 때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내가 하느님을 찾으며 그가 잘 살아가길 기도했지만 그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같은 모습으로 병원을 들락거렸고 어느 날부터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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