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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30. 2022

동네 언니 로라(Laura)

임순 씨의 이웃들 1

남편이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해서 미국 대학을 졸업하자 큰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나 역시 병원에서 막 승진을 해서 수입이 많아지자 대출을 끼고 집을 사기로 했다.

아이들이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여서 방두 개 아파트 생활이 불편해 더욱 넓은 집이 간절했다.

여러 집을 둘러보다 지금 사는 이 집을 보는 순간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집이야.'하고 반해버렸다. 집 근처의 멋진 공원이 있는 것이 좋았고  작은 공원 만한 마당에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방이 5개나 있는 큰 저택이었다. 그동안 살던 아파트의 세 배쯤 되는  큰 집이어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남편과 나는 평생 살 집으로  정하고 사기로 결정했다.


백인들만 사는 그 골목의 제일 큰 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저 동양인 부부가 어떻게 저 큰 집을 샀지? 하는 의구심이 가득한 이웃들의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창의 커튼 틈으로 호기심 많은 이웃들의 눈이 우리를 관찰했지만 정작 만나서 인사라도 하면 밝은 얼굴로 받아는 줘도 금방 쌩하니 지나 가버리곤 했다.

이사 온 집이 마음에 들어 남편과 주말마다 집 꾸미기에 공을 들이며 들떠서 몇 달을 보냈지만 정작 이웃들이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다.

 완고한 백인 동네에 '이사를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적응 못하면  미국 살이를 어떻게 하겠어? 아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좋은 이웃이 먼저 되기로 했다. 언제나 상냥하게 먼저 인사를 하고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공대를 나온 솜씨 좋은 남편이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왔다. 나 역시 내 직업에 맞게 의학적 지식을 알려주거나 동네 아이들이 놀다 무릎이 까지기라도 한 것을 보면 간단한 치료도 해주며 이웃과 잘 지내려 노력했다.
쉬는 날이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거나 이웃집 강아지 이름도 외어서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런 노력들이 통했는지 어느 날 앞집 사는 로라가


"임, 내일 쉬는 날이죠? 내일 아침 10시에 저희 집에서 차를  마시는 거 어때요?"하고 초대를 했다.

첫 초대를 받으니 기쁘고 뿌듯했다. 한국 마트에서 사다 둔  약과랑 떡을 챙겨 들고 기쁜 마음으로 로라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은 고풍스럽고 깔끔했고 정원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그녀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로라의 초대인 줄 알았는데  동네 여자들의 차모임이었다. 모두 얼굴은 낯익었으나 처음으로 대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한국 약과와 떡을 궁금해했고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부터 내가 쉬는 날에는 언제나 차모임에 초대되었고 정원 꽃 나누기 모임에도 초대받았다.
막상 친하고 보니 모두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로라는 기품 있고 세련된 시카고 토박이였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는 무뚝뚝하긴 해도 젠틀한 남자였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고 바쁠 때는 돌봐주기도 했다. 감사 인사를 하면

"조용하고 적적하게 사는데 아이들이 있으니. 북적대고 좋은 걸요." 하며 웃었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그녀는  마치 큰언니처럼  동네 이웃들과 이방인인 나를 연결해주었고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언제나 옆에 있어 줄 것 같았던 이웃 언니 로라가 세상을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다.

살아 있었으면 90이 넘었을 로라.

지난해 세상을 떠난 제임스랑 다시 만났는지 어떤지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녀의 집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그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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