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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29. 2022

옆집 몰리(Molly)네 가족

임순 씨의 이웃사랑

바람의 도시답게 간밤 내내  비가 오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어미 사슴 한 마리와 제법 자란 새끼 사슴 한 마리가  마당을 기웃거리다 내가 나오자 놀라서 풀쩍 뛰며 달아난다. 집이 숲 보호구역  공원과 가깝다 보니 간혹 집  정원의 채소를 뜯어먹던 사슴들도 계절 갈이를 하느라 색깔이 갈색에서 회색빛이 도는 색으로 바뀌었다.


아이들 키우며 오랫동안 정 붙이고 산 집이라 그냥 살고 있지만 은퇴한 두 부부가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커서 이제는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은 가을로 접어들 때는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데 어젯밤 비바람으로 흩어진 낙엽들과 나뭇가지들로  더욱 엉망이 되어 있었다. 국화꽃도 목이 꺾여 있었고 여름내 마당을 환하게 만들어주던 수국도 줄기가 뒤죽박죽 흐트러져 있었다. 채소밭도 수북한 낙엽으로 덮였고  끝물인  들깨대와 고추는 쓰러져 있었다.


마당을 정리하던 중 옆집 지붕에서 얼핏 몰리를 본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몰리, 너 거기서 뭐 하는 거니? 위험하다 얼른 내려와."

 돌이 갓 지난 때 이사 왔던 몰리가 열여섯이 되면서 제법 숙녀티가 났다.

"물이 새는 것 같아 올라와봤어요." 하며 씩씩하게 웃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저씨께 여쭤봐야겠어요." 한다

손나팔로

"아빠는 뭐하고 네가 올라가 있어?"하고 묻자 "다리를 다쳐서 못 움직이셔요." 한다

 그 인간이 다리를 안 다쳤어도 지붕 고치는 일을 할 위인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린 몰리를 지붕에 올라가게 한 것에 화가 났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집수리는 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 일일이 사람을 부르면 시간도 걸리고 비용도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다.

어린 몰리가  지붕을 고치러 올라간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솜씨 좋은 남편에게 부탁해서 몰리네의 지붕을 손봐주고 몰리 아빠의 다친 다리가 어떤지 살피러 갔다.
16년이나 옆집에서 미운 정 고운 정 쌓고 살아서 비싼 병원비가 아까워 병원을 갔을 리 없는 것을  뻔히 알아 모른 체하기 힘들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흰쌀밥과 미역국을 한 솥 끓여 들고 그의 다리를 치료할 약도 챙겨서 몰리네를 찾았다

벨을 누르니 아침인데도 술에 취한 채 다리를 절룩이면 문을 열어주었다. 집은 마리화나 냄새에 찌들어있었고 청소를 안 한 지 오래되어  엉망이었다.

 두해 전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한 그를 참지 못하고 몰리 엄마가 떠나자 그는 삶을 포기한 듯 살아가고 있었다.


치료를 하면서
"몰리가 엄마한테 가버리면 살 수 있겠어요? 당신에게 몰리는 선물이에요. 감사하며 몰리를 위해 제발 정신 차려요. 그리고 집에서 마리화나 피우지 말아요. 몰리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어요? 그 애가 당신처럼 살면 좋겠어요?" 하자 본성이 순한 그는 눈을 꿈뻑이며 얌전히 듣고 있었다.

"갑자기 끊기 힘들어도 시도는 해봐야죠.  마리화나 피우는 것 말고 캔디나 다른 것으로  대신해요."하자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이럴 때는 갓 태어난 몰리를 안고 열심히 돈을 모아 산 집을 아내와 함께 꾸미며 행복해하던 착하고 성실했던 몰리 아빠의  젊은 모습 그대로다.

몇 끼를 굶었는지 미역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는 집을 나서는 나에게"고마워요 임." 한다

임은 처음 이사 온 날부터 그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다리 조심해요 내일 또 치료해줄게요."하고 몰리네를 나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수가 따로 없어.'
못난 동생 같아서  나는 그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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