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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30. 2022

두 딸의 아버지 피터(Peter)

임순 씨의 인생공부

오랜  시간 동안 몸을 아끼지 않은 탓에 무릎 수술을 해야 했고 무릎 재활을 위한 산책은 내 일상이 되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어떤 때는 두어 시간씩 걸을 때도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집 공원을 지나 골프 코스 옆 오래된 산책길이다.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길이라고 한다. 길 옆에는 말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어서 아직도 옛날처럼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가끔 보인다. 승마장이 가까이 있어 말 산책길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100년도 더 되었을 큰 나무들이 가장자리에 주욱 서있고 잘 조경된 고풍스러운  골프 코스도 보여 길은 정말 아름답다.

길은 숲 보호구역의 자연공원으로 주욱 연결되어 있고 숲으로 들어가면 사슴이나 너구리를 만날 때도 있다.

계절별로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 같은 그 길을 매일 한두 시간씩 걷다 보면 같은 시간에 그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낯이 익게 된다.

처음에는 Hi, Good morning! 정도 인사를 하다 조금씩 긴 인사를 하게 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서서 한참씩  같이 나온 강아지 얘기나 소소한 가족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산책길에서 새로 알게 된  피터는 두 딸의 아버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그는 결혼식이나 파티 같은 곳에서 부르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피터는  언제나 잘 웃고 섬세하게 사람을 헤아릴 줄 알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산책길에서 그를 만날 때마다 오랜  동네 친구를 만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가 많았다.

도 두 딸 이야기를 자주 했고 나 역시 두 딸을 가진 엄마라서 그를 만날 때마다 시집도 안 가고 일에 묻혀 사는 딸에 대한 걱정이나 불만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특히 둘째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보였다. 둘째 딸이 우리 가족의 선물이고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내리사랑이라 막내를 예뻐하는군' 생각했다.

이제 산책 길에 나서면 으레 그가 있는지 둘러보게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온 그의 모습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늘은  딸과 함께 산책 나왔나 보다.

그와 그의  딸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딸을 쳐다보며

"임, 우리 둘째예요. 예쁘지요?" 하며 나에게  소개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하고 인사를 하며 얼굴을 보니 그의 둘째는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이였다.

그는 아이가 엄마가 다니는 학교에 보조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면서

 "엄마기 수업할 때 자료도 척척 나눠주고 정말 일을 잘하고 있다고 해요."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가족은 요즘 매일이 기적 같고 너무나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그와 헤어진 후 한참 동안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초등학교 교사인 큰딸이 서른이 넘어  시집도 안 가고 독립도 하지 않고 부모한테 얹혀  산다고 흉보고,

의사인 작은 딸이 성격이 까탈스럽고 돈을 모을 생각을 않고 휴가 때마다 여행 다니느라 바쁘다고  하소연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얼굴이 뜨거웠다.

"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아이가 작은 일이라도 해내기만을 기도하며 살았어요."라는 피터의 말이 온종일 나를 부끄럽게 만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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