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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30. 2022

떠나가는 사람들

임순 씨의 이웃들2

앞집 로라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임스는 10년 넘게 혼자 지내고 있다. 아내도 자식도 없이 홀로 늙어가는 그가 안타깝고 가여웠다.

30년 가까이 이웃으로 지내다 보니  한 가족처럼 여겨져서 틈틈이 그를 들여다는 보지만 내 살림처럼 돌봐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흔이 다 되어도 정정하던 그가 언젠가부터 문밖 출입을 잘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유산을 상속받기로 한 그의 조카가 들여다보고 살림은 가정부가 돌봐주고 있었다.


 그가 어쩌고 있나 궁금해서  정원 청소를 하고 있는 가정부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더니  "전혀 드시지를 않아요. 돌아가실까 봐 걱정이에요." 하며 그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전복죽을 끓여서 그의 집에 들렀다. 집은 로라가 있을 때처럼 정갈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쓸쓸했다.

며칠을 수프만 겨우 넘겼는데 전복죽이 입맛에 맞다며 작은 공기 하나 정도를 싹 비워냈다.

빈 그릇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다는 그를 위해 가정부와 안락의자에 그를 앉혔다. 그는 너무나 말랐고 가벼웠다. 안락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그에게

"제임스, 요양 병원이라도 가는 게 어때요?" 하니 고개를 흔들며 싫다고 말하며

"로라와의 추억이 있는 이 집에서 잠들고 싶어요." 한다.

그의  주름지고 앙상한  손을 살짝 만져주고

"내일 또 올게요."하고 일어났다.


거의 매일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음식은 먹고 있는지 걱정돼서 산책 나가는 길에 잠깐씩 들르곤 했다.

어느 날 제임스가

"임, 당신이 괜찮다면 저희 부부가 쓰던 식탁이랑 그릇장, 작은 테이블을 당신께 선물하고 싶어요." 한다.

그 가구들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고마워요, 제임스"하고 말은 했지만 우리 집에도 좋은 가구가 충분히 있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물건을 집에 둔다고 생각하니 조금 께름칙하기도 해서 '고맙지만 사양할게요.'하고 말하나 어쩌나 고민하며 그 집을 나왔다.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고심한 제임스의 마음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그가 보낸 사람이 식탁과 그릇장, 테이블을 가지고 오겠다며

" 어디로 갖다 드릴까요?" 한다.

깜짝 놀라서 제임스 집으로 달려가니

"임, 내가 아직 멀쩡할 때  보내드리고 싶었어요."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후 일주일 뒤 제임스는 잠자듯 세상을 떠났다. 그가 천국에서 로라를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집 지하실은 웬만한 아파트 크기만 해서 늘 휑하고 스산했는데 그곳에 로라와 제임스가 쓰던 가구들을 옮겨놓으니  로라가 티타임에 초대해준 그때의  따뜻하고 정갈한 분위가 생겨서 휴식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가구를 놓고 보니 로라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가구예요." 했던 기억이 났다.

"남이 쓰던 구닥다리 왜 갖고 와?" 하며 반대하는 딸들에게

"그 가구들은  100년도  더 된 가구들인데 이제 내가 물려받았으니 나중 엄청난 골동품이 될 거야."하고 큰소리치며 집으로 들여 놓기를 잘했다 싶었다.

 유행은 살짝 지났어도 좋은 나무로 만든 고급진 가구의 빛깔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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