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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28. 2022

임순 씨의 달콤한 하루

-특실 환자 루시안

젊은 멕시코 출신 간호사 소코(Soco)의 손길을 거부한 특실 환자 루시안(Lucjan)은 우리 간호사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 1호였다. 그는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처방 약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치료를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권하면

“그런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 녀석들이 나보다 먼저 가더군.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던 주치의의 장례식에 가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했지.”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온갖 병을 달고 있는 그는 90세가 넘은 고집 불통에 인종 차별주의자 영감탱이다.

흑인이거나 동양인, 남미 간호사에게 특히 심했는데 간호사가 자신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바꿔 달라거나 웃지 않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것이 불만인 것 같다고 바꿔달라고 하고 심지어 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꿔 달라며 까탈을 부렸다.

그는 비판적이며 직설적인 말투로 간호사들을 질리게 했고 경험 많은 간호사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그를 씻기거나 옷을 갈아입히다 쫓겨난 간호사는 그 방에 다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부동산 쪽의 큰 회사를 운영했다는 그는 괴팍한 성격 탓인지 입원한 동안 가족들도 그를 찾지 않았다.


“당장 나가!” 그의 입원실에서 또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건을 던졌는지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빨개진 나오미가 화난 표정으로 병실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소코 대신 그를 맡게 된 침착하고 경험 많은 콜롬비아 출신 간호사였다.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고 미소로 환자를 대하는 그녀조차 그의 생트집에 인내심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오미를 달랜 후 상황을 들어보니 환자복을 갈아입히다 조금 거슬리게 했는지 그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의 입원실 앞에서 조금 시간을 보낸 후 병실을 들어서니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완강히 거부하며 심술을 부렸지만 40년 가까이 수도 없이 그런 환자를 다뤄온 내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옷을 벗기고 손발톱을 깎고 작은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느라 온몸에 땀이 흘렀다.

그가 온갖 생트집을 잡으며

‘못생긴 간호사가 그를 괴롭힌다 ‘며 화를 내도

“좀 못생겨도 참아요, 눈을 감고 있든가.”라고 농담하며 덩치 큰 그의 몸을 이리저리 휙 젖히며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먹지 않으려는 약까지 먹이고 정리 후 나가는 나의 뒤통수에  그는  온갖 악담을 퍼부었지만 못 들은 척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병실을 나섰다.

며칠 동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그의 생트집이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약도 잘 먹고 씻기거나 환자복을 갈아입힐 때 가끔 고분고분하게 굴 때도 있었다.

그가 회복해서 병원을 떠나는 날 간호사들은 앞으로 찾아 올 평화를 기대하며 내색을 않으려 애쓰긴 해도 저절로 떠오른 미소를 짓고 기쁜 표정들이었다.


그가 떠난 후 평화로워진 병원에 커다란 박스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 가득 고급 초콜릿이 들어 있었고 작고 특별한 상자 하나에는 선물과 또 다른 초콜릿이 포장되어 있었다.

그 고집불통 영감탱이가 자필로 쓴 카드도 함께 들어있었다.

‘임순, 나를 잘 돌봐준 당신에게 감사를 보내며 이 초콜릿을 모두와 나눠먹기 바래요.’

그날은 울면서 쫓겨난 소코도, 얼굴이 빨개져서 뛰쳐나온 나오미도 초콜릿을 나눠먹으며 조금은 달콤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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