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는 언제나 인상을 구기고 화를 잘 내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닥터 칼(Carl)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해 차트로 카운터를 탕탕 내리치며 간호사들을 잡도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멕시코 출신 소코(Soco)가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소코뿐 아니라 경험이 많은 다른 간호사들까지 한꺼번에 혼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얼마 전 입원한 특실의 루시안이라는 부자 노인이 긴장한 소코의 무뚝뚝한 표정과 억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온갖 트집을 부리며 간호사를 바꾸라고 닥터 칼에게 화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닥터 칼은 툭하면 간호사들에게 화를 내니까 오늘도 별일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약을 바꿔 복용하게 했다던가 하는 심각한 실수가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별 일 아니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나다 들른 것처럼 모르는 척하며 상황을 보다가 닥터 칼을 등지고 한 눈을 찡긋하며 소코를 나무랐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는 사소한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거야! 무슨 일이길래 닥터가 저렇게 화난 거니?” 수간호사인 내가 나서서 그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어린 간호사를 혼내자 머쓱해진 닥터 칼이 소란을 멈추고 진료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부자 백인 영감탱이 환자에게도 화가 났고, 병원의 중요 고객인 그 심술쟁이 영감의 비위를 맞추느라 간호사들을 존중하지 않고 아랫사람 대하듯 잡도리하는 닥터 칼에게도 화가 났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의사이면 다야? 간호사들도 다 대학 나오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고 있고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이도 있는데 아랫사람 대하듯 하다니…… ’ 생각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도 끝의 자판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들고 닥터 칼의 진료실을 노크했다.
“똑똑”
엉뚱한데 화풀이를 한 게 미안했는지 사람을 만나기 싫었던 것인지 기척이 없었다.
“똑똑”
다시 두드리니 잠시 틈을 두고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했다.
잠시 문밖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으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감정조절을 못하고 지나치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이 좀 불편했는지 그는 인상을 구기고 시큰둥하게 왜 왔냐고 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음료수로 뒤통수를 갈겨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미소를 지으며
“당신에게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며 음료수를 건넸다.
따지러 온 줄 알고 경계하다 의외의 반응에 그는 긴장을 조금 푸는 것 같았다.
“창을 좀 열어도 될까요?”하고 물으니 그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인드를 걷고 창을 활짝 여니 봄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 진료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칼, 오늘 날씨가 환상적이네요 봄바람도 따뜻하고.” 하자 그는 도대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보다가 슬쩍 눈이 마주쳤다.
“오늘 날씨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데 당신이 잘생긴 얼굴로 봄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준다면 우리 모두에게 더욱 완벽한 하루가 될 거예요.” 하자 따로 말은 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이야기 하기를 거부하며 나가기를 바라는 분위기를 풍기던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귀를 기울였다.
“당신이 의사가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고 지식도 많을 거예요. 당신의 전문 분야를 우리 간호사들은 존중해요. 하지만 우리 간호사들도 많은 공부를 하고 수많은 경험을 쌓아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당신이 알고 우리가 모르는 것은 당신이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되고 또 당신이 모르는 일은 경험 많은 간호사들이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거예요.”
엄마 뻘인 수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하자 풀이 죽은 그는 뻔한 이야기인데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의 진료실을 나오는 길에
“칼, 당신 지금 표정이 너무 멋지네요.”
하고 농담을 던지자 병원 온 이후 처음으로 그의 입가에 봄 햇살 같은 미소가 잠시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