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일도 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이 모임 저 모임 다니느라 많아서 정신없이 바빴던 한국 생활과 달리 아는 사람이 없는 시카고의 생활은 심심하고 지루하고 답답했기만 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받아서 생활하는 전업주부 생활을 언제나 꿈꾸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한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는 하는 일 없이 노는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 생활에서는 내 또래의 여자들도 대부분 일을 하는 분위기여서 친구 찾기도 어려웠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에 운동이라고 하려고 전국 체인인 LA 피트니스에 등록을 했다. 첫날 운동을 마치고 시설을 둘러보니 사우나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
피트니스의 사우나에는 운동을 마친 여자들이 운동복을 입은 채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꽤 복잡했다.
그곳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사우나의 열기에 빨갛게 익은 얼굴 때문인지 나이와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레깅스와 브라 탑을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배우 같이 생긴 젊은 백인 여자와 커다란 비치 수건을 원피스처럼 두른 그녀는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나누고 간간이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더워서 땀을 흘리던 중년의 남미 쪽 여자도 그녀와 밝게 인사를 나눈 후 사우나를 떠났다.
매끄러운 영어로 중년인지 노년에 접어들었는지 애매하게 보이는 그녀는 옆 사람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다 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나간 후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젊은 백인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I Love her.” 하고 말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버릇이 새로 생긴 탓에 문득 ‘어떤 사람이길래 모두 그녀를 좋아하는 거지? love가 아닌 like라고 해야 하는 것 아냐?’하는 생각에 그 동양인 여자가 궁금했다.
희끗희끗한 단발머리에 둥근 얼굴이고 약간 살집이 있는 몸에 무릎 수술을 했는지 뻗정다리로 걷는 모습이 전형적인 중국인 같아서 중국인이 아닐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사우나를 나서자 그녀는 복도에서 청소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동을 하다가 말없이 청소하는 그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슬쩍슬쩍 피해 주기는 해도 청소부와 반갑게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녀가 어디서든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이상하게도 수다스러워 보이거나 거슬리지 않았다. 지나가던 중년의 백인 여자가 그녀를 보며 반색을 하고 다가왔다. 두 사람은 오랜만인지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슬쩍 그녀가 한국인임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웃던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자 그녀도 “안녕하세요?”라며 받아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삶에 손님처럼 들어왔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며 평생 만날 사이가 아니었던 사람을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 삶에 이 사람이 있었던가?’ 싶게 너무나 신기할 때가 있다.
이후 가끔 그녀를 만나 점심을 먹거나 산책을 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널따란 마당에서 가꾼 깻잎이나 고추, 부추 같은 귀한 한국 채소들을 얻으러 그녀의 집에도 가는 사이가 되었다.
70년 대에 대구에서 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이민을 온 그녀는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과 만나 결혼했고 딸이 둘이 있다고 했다. 한 명은 초등학교 교사이고 작은 딸은 의사라고 했다. 40년간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했고 3년 전 온 병원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은퇴를 했고 이제는 여행을 가거나 라인 댄스를 배우고 시간이 남으면 피트니스에서 운동도 하며 은퇴 후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70이 넘은 그녀가 열댓 살이나 어린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했을 때는 조금 어색했지만 그녀가 살아온 이민 생활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야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때로는 시간 가는 줄 모고 듣다가 헤어질 때는 늘 아쉽다.
가끔 그녀와 헤어질 때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나 역시 “I Love her”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