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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희 Oct 30. 2022

시카고에는 임순 씨가 산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봐요

"카톡"

 한국 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라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낼 사람도 없고 미국에서는 아는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나에게 오후 서너 시쯤 울리는 카톡 소리는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서 언제나 즐거운 소리다.

'오늘은 어떤 내용을 보내셨나?'궁금해서 얼른 전화기를 켰다.

오늘은 피아노 반주로 애절하게 부르는 '가을바람'이라는 노래 선물과 '오드리 헵번이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한국에서 이런 카톡이 오면 '누가 할 일 없이 이런 걸 보내나' 하며 읽지도 않고 지우기 바빴다.  

임순 씨가 산책을 다녀온 여유 시간에 식탁에 앉아 내 생각을 하면서 돋보기를 끼고 어딘가에서 좋은 글이나  계절에 맞는 노래를 찾아 정성껏 보내준다는 생각에 읽거나 듣다 보니 생각보다 좋아서 이제는 이 시간의  "카톡"소리는  반가운 소리가 되었다.


"내일 운동 나가면서 집 앞에 들를 테니 잠시 얼굴 볼 수 있어요?" 하는 카톡도 연달아 뜬다.

아침 운동을 나가며 잠시 들른 그녀의 손에는 시집간 딸 챙기듯 바리바리 짐들이 가득하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시라고 붙잡아도 바쁘다며 얼른 떠나버린다.

  집에 들어와 열어보니 커다란 봉투에 골프공이 반짝반짝하게 닦인 채 가득 들어있다. 작은 봉투에는 부추가 가지런히 손질된 채 들어있고 또 다른 통에는 깻잎김치, 쑥떡 등이 골고루 들어있다.

   골프공은 우리 부부가 골프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골프코스 옆 산책길에서 하나씩 주워 모아 씻은 것이고 나머지 봉투에 담긴 것들은 집에서 기른 것들인데 한국 음식 생각날 것 같아 챙겼다고 한다.

주운 골프공을 이렇게 하나하나 닦고, 손질하기 귀찮은 부추를 정갈하게 다듬고 한국에 갔을 때 캐서 살짝 숨겨와서 키운 쑥으로 떡을 만드느라 아마 허리가 아팠을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내 미국 살이의 가장 큰 고민은 인간관계인 것 같아요. 미국 사람들도 그렇고 여기에서 오랫동안 산 한국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게 힘들어요. 30년이나 40년을 여기에서 산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올 때의 한국인 정서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고 낯선 땅에서 빈손으로 와서  살아내야했던 분들 특유의 강인함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해요."하고 하소연을 하는 나에게 임순 씨는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야 해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다른 이도 마음을 열지요." 한다 .

참 심플한 조언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좋은 얘기, 힘겨웠던 얘기, 때로는 부끄러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나 스스로 문제를 찾도록 돠와 준다.

그녀가 들려주는 병원 이야기나 이웃 이야기는 내게  위로가 되고 때로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길을 찾게 해 준다.

왜 사람들이 임순 씨를 좋아하고 그녀에게서 위로를 받는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녀가 왜 '마음을 열라'고 하는지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는 여기 살아야 하고 아직 이곳에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시카고에는 임순 씨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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