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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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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트리 Dec 12. 2023

짧은 마을 산책

------ 효돈에 가야 효돈이 보인다

  

오만한 태(胎)에서

한 아이가 걸어나왔다

등을 쳤더니 목까지 부러뜨리며

벼랑에 드러눕는다

가만 바라보면

아이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오스스 이마를 일으킨다

한번 죽어 죽음을 말끔히 털어낸

경쾌한 걸음걸이로

오만한 아이가 삶의 벼랑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죽음이 없는 묘지는 권태롭다

묘지에서 뛰어내린 삶들은

도처에 깔린 벼랑의 탯줄을 안고 조용히

바다로 향한다 

― 「파도」 전문 ([나는 식물성이다], 문학과지성사, 1999, 41쪽)



1. 쇠소깍이 있다

고여 있다 해야 할까 흐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 중간쯤의 움직임이라 해야 할까. 쇠소깍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묘한 여운에 압도당할 것이다. 수면에 명랑하게 떠오른 코발트블루 빛을 음험한 깊이의 물빛이 에워싸고 있다. 용암 절벽은 길게 늘어서서 상충하는 두 문양의 물빛을 다독이며 반짝거린다. 

‘쇠소깍’은 소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효돈의 옛 지명 ‘쇠돈’의 ‘쇠’와 물웅덩이를 뜻하는 ‘소(沼)’, 끄트머리를 가리키는 제주방언의 접미사 ‘깍’이 합쳐진 파생어다. 그러므로 쇠소깍에는 효돈을 가르는 물줄기의 끝자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널리 알려지기 전, 쇠소깍은 마을 사람들에게 양가적 감정의 대상이었다. 거기에는 태고의 신비 같은 경외뿐만 아니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두려움도 존재했다. 쇠소깍의 심연은 끝 모를 깊이라는 풍문이 제법 그럴싸하게 마을을 떠돌았다. 경외나 두려움이란 모두 신성성의 한 뿌리로 회귀되기 마련이다. 신성성의 몫으로 풍문의 비밀을 덮으며 사람들의 양가감정이 은밀히 누적되어 왔을 터였다.

쇠소깍의 지형은 누적되어온 신성성을 증명하듯 신비한 적요에 싸여 있다. 쇠소깍 따라 걷노라면 생각 하나가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어느 사이 말캉말캉한 속살을 드러내는 용암절벽들. 마치 생명을 품은 자궁처럼 낯이 익다. 순간 깨닫는다 쇠소깍의 신비는 생명을 잉태하는 바다의 시원이었음을.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온 섬의 서사가 쇠소깍에 깃든 뒤 바다로 향하고 있음을.                        



2. 월라봉을 거닐다

월라봉 초입의 풀꽃들은 화려하지 않고 질박하다. 수다스럽게 나투는 풀꽃들의 서정이 잎사귀 하나의 흔들림마저 친근함으로 변환하는 마법을 발휘한다.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면, 풀꽃과 나비 한 잎의 저릿한 감각들은 봉우리로 이어지며 능선이 된다. 점점 짙어지는 초록의 공간에 발을 내딛자 알 수 없는 느낌이 밀려온다. 이 숲길을 까마득히 오래 전에도 걸었던 것 같은 어슴푸레한 기시감. 설령 착각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막연함이라기보다 오히려 명징한 확신에 가까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풀잎이었던 게지. 풀잎이었다가 나무였다가 나무에 얹힌 바람 한 줌이기도 했겠지. 그 어느 태고에 만났던 풀과 나무들과 바람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듯, 월라봉은 야트막하지만 사뭇 위풍당당했다.   

좁은 산책로를 따라 오던 자잘한 바람결들은 행인을 추월하며 잔잔히 나부낀다. 바람의 이끌림대로 들어선 산정에 포제단이 놓여 있다. 그곳에서 해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올린다고 한다. 지치고 다소 들떠 있던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잠시 머물러 기원 한 줄 얹어본다. 포제단에 얹은 마음은 그것이 설령 잘못 뱉은 농담일지라도 좋은 축원으로 너끈히 환골탈태할 성 싶다. 

정상바위에 서면 서귀포 온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섶섬과 지귀도, 작은 돌섬들. 그들의 뿌리가 월라봉에 닿아 있었음을 비로소 짐작하게 된다. 월라봉 정상바위가 그토록 선명히 바다를 품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상념을 젖히고 ‘생이소리길’이 펼쳐진다. 나무마다 매달린 ‘생이집(새집)’이 앙증맞다. 고개 내민 아기새와 운 좋게도 눈 마주쳤을 때, 새는 호들갑스럽게 날아올랐다. 그곳은 ‘생이’의 집이 있는 ‘생이소리길’이다. 눈치 없는 행인이 불쑥 들이닥친 것은 결례였음이 틀림없다. 아무 말 없이 뒤꿈치 들어 살살 돌아나온다. 따라오던 생각 너머의 발자국들도 새소리 너머 표표히 흩어진다. 새소리 쫓아나서는 아이처럼 월라봉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3. 귤 익는 마을

여름 볕에 주렁주렁 매달린 하귤들이 탐스럽다. 130년이 넘는 하귤나무를 만난 건 월라봉 산책로와 잇닿은 감귤박물관에서였다. 스스로 역사의 증거물이 된 하귤나무는 방문객을 맞으며 박물관 포토존을 지키고 있었다. 관람하던 한 여행객은 제주 이미지를 감귤로써 기억한다고 했다. 봄에 피어나는 하얀 감귤꽃의 자태와 향기, 꽃이 지고 열매가 푸르게 영글어가는 여름을 지나 지천을 붉게 뒤덮는 가을과 겨울의 감귤 풍광이야말로 제주다움이라는 설명이었다. 

박물관의 최고령 하귤나무는 제주향토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1894년 김병호(하귤나무 기증자 고 김성보의 조부)가 경주김씨의 세습직이었던 감목관 직제폐지를 위해 상경하였을 당시, 갑오개혁을 추진 중이던 친족 총리대신 김홍집에게서 씨앗을 얻어와 키운 나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이 하귤나무가 제주에 최초로 들여온 귤나무다. 

씨앗에서 발아하여 끈질기게 살아남은 하귤나무의 서사가 제주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 서사가 제주인의 삶을 대변한다면, 현재 제주인의 삶은 하귤나무의 탐스런 열매로 압축되어 읽힌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 옛날 김병호가 척박한 땅에 씨앗을 심고 꿋꿋하게 키워온 것은 단순히 과일나무의 씨앗이 아니라 제주의 미래를 염원하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효돈은 감귤의 주산지다. 돌이켜 생각하면, 130여 년 전 하귤 씨앗을 심은 곳이 효돈이었다는 사실은 필연으로 점철된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병호가 김홍집에게서 얻어온 씨앗 3개 중 호근과 서호로 시집 간 두 딸에게 준 씨앗 2개는 끝내 고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씨앗 하나만이 싹을 틔우고 장성하여 100년이 넘는 자목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효돈이 감귤 주산지로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땅을 일궈온 마을사람들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감귤 씨앗 자신의 선택이 있었다. 씨앗이 스스로 선택한 마을. 감귤의 운명은 효돈과 함께 면면히 뿌리를 내려온 것이다. 그 뿌리 한 가닥 소원나무에 걸어 놓는다. 은근 마음 붉어진다. 뉘엿뉘엿 코끝 찡하게 물들이는 석양이 감귤빛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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