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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다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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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손놀림은 빠르다. 일식집 주방장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실력이 좋아서 고급 호텔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아버지는 뭐든 빠른 것을 좋아한다. 회를 써는 것도 초밥을 만드는 것도. 특히 초밥은 밥과 생선 살이 손에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맛이 좋아지니 당연한 일이겠다.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회를 빨리 써는 사람이나 초밥을 1분에 70개씩 만드는 사람도 아버지보다 느리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더 빨라지길 원했다.

  얼음 조각 주문이 들어오면 조각칼부터 꺼낸다. 얼음 창고에서 커다란 얼음덩어리를 꺼낼 때마다 두꺼운 장갑 사이로 파고드는 시린 기운에 몸서리친다. 아버지는 초밥을 만들기에 앞서 손의 온도를 낮게 하려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 꺼내기를 반복했다.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나는 결혼식이나 행사에 장식용으로 쓰이는 얼음조각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얼음조각은 겨울보단 여름에 더 인기가 있어 녹기 전에 빨리 운송하여 그 행사가 끝날 때까지 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각은 재료를 불문하고 섬세해야 하며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아주 작은 모양을 만들 때도 몇 번을 다듬고 고치며 갈아댄다. 특히 얼음이라는 까다로운 재료를 다룰 땐 나무나 돌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칼끝이 너무 뭉툭해도 안 되고 생각을 너무 오래 해도 안 된다. 구도를 잡았으면 쉴 틈 없이 깎아내야 한다. 회도 마찬가지다. 당장에 광어회를 썬다 하더라도 칼이 잘 갈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반듯하게 썰리고 맛도 좋다. 자칫 잘못하면 회가 칼에 붙으면서 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땐 맛은 물론 모양새까지 망친 경우다.

  아버지는 늘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칼을 갈았다. 사시미라 불리는 큰 칼을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내가 보기에 정말 무서웠다. 나는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의 가게로 갔다. 아버지와 함께 집에 가려고 가게의 영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영업이 끝나면 아버지는 항상 생선 한 마리를 잡아 회를 떠 집으로 가져갔는데 마지막 살점은 꼭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내가 진로를 결정해 학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가게로 가는 날이 줄어들수록 아버지와는 멀어졌고 사춘기가 왔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칼은 쉬지 않았다. 그 칼에서 나의 학비가 나왔고 미술학원 재료비가 나왔다. 칼을 든 아버지는 싫었지만 그런 아버지가 벌어주는 돈으로 살아왔다.

  아버지가 사라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아버지보다 집에 늦게 들어갔다. 아버지의 단화는 없었다. 낡고 투박한 가죽 단화. 부모님 방의 문을 열었지만 거실의 불빛에 비치는 건 어머니의 마른 어깨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한잔하시나 보다 하고는 피곤에 이끌려 잤다. 아침에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가게에 가봤지만 잘 썰려 그릇에 담긴 회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아버지의 마지막 칼 놀림이었다.

  아버지의 칼에서 나온 돈이 없었지만 나는 계속 학비를 냈고 학원 재료비를 냈다. 어머니는 전보다 더 야위었다. 미술학원 원장은 나에게 시각디자인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2년이나 지난 후에 꺼냈다. 아버지와 칼이 생각났다.


  -저 조소과로 바꾸고 싶어요.

  -그러기엔 좀 늦지 않니? 내가 시디와 안 맞는 것 같다고 했어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 거야. 좀 더 열심히 하라고 이런 말을 한 거고.


  고집이 센 원장도 나의 마음을 바꾸진 못했다.

  나는 대학교 조소학과에 입학해 조각 분반으로 나누어졌다. 졸업 후 얼음조각가를 찾아가 3년을 배웠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징그럽다는 듯 중얼거린다.


  -난 칼로 벌어먹고 사는 놈들이 제일 싫어. 니 놈도 아주 영영 떠나버릴 거지?


  얼마 전 이가 몇 없는 어머니께 틀니를 해드렸다.

  이 얼음 조각은 아버지의 회 뜨기와 비슷하다. 최대한 차갑게 유지하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나름의 작품성도 인정받고 수입도 좋은 편이다.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요즘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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