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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Oct 27. 2024

사랑은 카파도키아 열기구를 타고

터키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 ♥

  우리는 새벽 4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늘은 벌룬투어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투어 대신 떠오르는 열기구를 배경으로 사진만 남기기로 했다. 투어를 하면 직접 열기구에 탑승해 조종사와 함께 카파도키아 괴레메의 풍경을 상공에서 감상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면 안전여행을 기념하며 다 같이 샴페인을 한잔씩 마시고 ‘열기구 탑승 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열기구 탑승 후 샴페인을 마시는 사람들


   벌룬투어는 괴레메 지역에서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여행상품이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열기구가 뜨지 못하고 다음날 투어비용만 비싸지기 때문에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매일 투어가 진행되었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가격비교까지 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이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투어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내 남자친구 때문이다. 당연히 그와 함께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었는데 그가 안 탈 거란다. 일행 중 체리언니마저 사진만 찍겠다고 하니 나와 선규오빠 둘이 해야 할 판이었다. 투어시간 총 3시간 동안 은상오빠와 체리언니 둘만 두고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둘의 사이가 불안했다. 열기구 탑승보다 사랑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새벽 5시쯤, 투어업체에서 보내준 픽업차량이 먼저 도착했고 선규 오빠 혼자 숙소를 나섰다. 잠시 후 나, 은상오빠, 체리언니 세명도 렌터카에 몸을 싣고 괴레메 뷰포인트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한 몇몇 풍선들이 벌써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은상오빠는 떠오르는 풍선을 보며 떠오른 노래가 있다고 했다. 곧이어 스피커의 볼륨이 높아졌다.  

                                  

                                    ♬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그는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떠오르는 열기구와 운전하는 그의 뒷모습, 그리고 곧게 뻗은 도로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서 짧은 영상을 찍었다. 오늘 저녁에 멋지게 편집해서 오빠에게 보내줄 예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봐야지. '아까 열기구 보면서 아빠 생각났죠?' 


         

떠오르고 있는 열기구

  

  6시가 조금 넘었을까. 알록달록 오색 찬란한 열기구들이 힘차게 불을 뿜으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족히 100개는 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런 광경을 전 세계에서 또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물론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곳은 있다. 하지만 이 신기한 기암괴석과의 조화로움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열기구가 하강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진을 남겨야 한다. 이곳에서 인생샷을 못 건지면 터키에 다시 와야 한다. 은상오빠는 나와 체리언니에게 한 명씩 서보라고 하더니 독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도 그를 찍어 주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는 체리언니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그들은 서로 다정하게 사진을 찍어 주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혼자 셀카만 연신 찍고 있는 내가 안 돼 보였을까. 옆에 있던 한국인 청년들이 말을 걸었다.  

       

  “저희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것도 들어 드릴게요. 이리 주세요.”

일행 중 한 명이 내가 들고 있던 셀카봉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영광이에요.”     

그들은 아주 열심히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지금 뒤돌아 보셔서 좋을 것 같아요."

 맙소사. 포즈까지 코칭해 주다니.     

  “남자친구보다 더 열심히 찍어 주시네요. 저도 찍어드릴게요”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여러 장의 단체컷과 영상을 남겨 주었다.    

  “사실 저도 일행 두 명이랑 같이 왔는데 어디 갔는지 안 보이네요. 사진 정말 감사해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어쩜 저리도 착하고 밝은 청년들이 있는지. 참으로 바람직하다. 저들의 부모는 아들들을 참 잘 키운 것 같다. 나는 머나먼 땅 터키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진심으로 그들이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동화속 같은 포토스팟

     

  어느덧 시간은 흘러 열기구들이 하나둘씩 하강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셀카봉을 이용해 '인생샷 건지기'에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였다.     

  “역시, 셀카봉이 좋아. 저게 있어야 돼.”

은상오빠 목소리였다. 예상대로 그의 옆엔 체리언니가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생각했다. ‘셀카봉이 좋아서 이걸로 찍는 게 아니라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있는 거야.’   

        

  이 멋진 카파도키아에서 여자친구를 두고 다른 여자와 다니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사귀는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기분 나빠할 거라더니,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더니, 정작 나의 기분은 하나도 생각 안 하나 보다. 나는 이미 그에게 삐진 티를 낸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이곳 진짜 멋지지? 그런데 오늘 여기서 혼자 다녔어. 

  -정말? 사진 엄청 이쁘네.

  -응, 오빠는 터키에 체리언니랑 데이트하러 온 건지 여행하러 온 건지 모르겠네.

  -좀 더 지켜봐. 언니 혼자 두고 너랑만 너무 친하게 지내면 기분 나쁠까 봐 그런 걸 거야.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의 마음은 카파도키아 열기구와 함께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것을.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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