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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Oct 26. 2024

오빠, 내가 준 커피 다른 여자 타주지 마요.

내 마음... 까만 커피가루처럼

  “은상오빠, 고급커피 가지고 왔던데 그거 한번 마셔봅시다.”

체리언니의 말에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주황색 패키지의 드립커피를 꺼냈다. 잠시 후 팔팔 끓는 물과, 커피, 머그컵 네 잔을 식탁 위에 올리며 그가 내게 물었다.


  “예진이 B커피 알아요? 커피 마실래요?  

알다마다요. 질문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거 내가 너 마시라고 준거잖아.’ 

    

 나는 대답 대신 조금 더 자고 싶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진짜 졸려서라기보다는 그녀와 모닝커피를 마시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둘이 다정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오버랩될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서운함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커피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은상오빠와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즈음이었다. 싱가포르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동생이 선물을 사 왔다. 커피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B사의 고급 커피였다. 나는 그중 몇 개를 챙겨서 데이트할 때 가지고 나갔다. 평소 좋아하는 커피라며 그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아하는 걸 나눌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다. 

    

   터키여행을 앞두고 나는 고민이 생겼다. 10일간의 터키여행이 끝나면 나 혼자 20일간 다른 국가로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연애 초기 단계에서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불안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내 맘대로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그냥 같이 한국 가는 일정으로 할걸, 후회도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계획을 바꿀 수는 없었다.     


  “여행 끝나고 오빠 먼저 한국 가니까 그때 나 기다리면서 마셔요.”

나는 터키에 오기 전 B사 커피를 맛별로 여러 개 챙겨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그 커피를 굳이 이 먼 터키땅까지 싸들고 와서는 다른 여자에게 타주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혼자 딴생각하지 말고 내 생각하며 마시라는 의미로 준 건데... 그는 지금 괴레메의 한 숙소에서 다른 여자와 내가 준 커피를 마시고 있다.






  터키여행 4일 차에는 ATV 선셋투어를 했다. 다양한 지형을 오르내리며 스릴 넘치는 드라이빙을 경험할 수 있는 액티비티다. 괴레메의 신기한 기암괴석 사이를 신나게 달리는 사이 어느새 기분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러브밸리’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하트천국이었다. 알록달록하게 한껏 치장한 하트프레임으로 만든 포토존이 많았다. 다양한 인종의 연인들이 포즈를 취하며 추억을 남기고 있었지만 정작 남자친구와 함께 온 나는 커플 사진 한 장 못 건지고 있었다.    


 

(좌) ATV   (우) 러브밸리 포토존



  “여기서 오빠랑 둘이 찍어야 하는데...”

  “그러게... 넷이라도 같이 찍자”    


  그는 옆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나와 체리 언니가 먼저 하트 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남자 동행들이 하트 가장자리에 섰다. 나는 조심스럽게 은성오빠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V'자를 그렸다. ‘그래, 둘만 찍은 사진은 없지만 그래도 내 옆에 서서 찍었으니 커플 사진으로 치자.’  

   

   ATV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선셋포인트에 갔을 때, 나는 또 어제처럼 두리번거려야 했다. 어제도 일몰 때 내 옆에 없더니 오늘도 없다. 왜 자꾸 사라지는 거야? 해외여행 중 가장 로맨틱할 노을 지는 시간에 나의 연인은 매번 내 곁에 없었다. 이곳에서도 풍경사진만 잔뜩 사진첩에 쌓였다.


    

해는 지고, 그는 또 내 곁에 없고


  

  "어젯밤 둘이 무슨 얘기했어요? 체리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니야~ 그리고 서로 마음이 맞아야 뭐가 되는 거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좋아한다고 뭐가 진행되니?

  "나는 그냥 오빠랑 둘이 여행하고 싶다."

  "우리가 사귄 게 먼저가 아니라 이번 여행을 위해 모인 게 먼저니까 들키지 말아야 해."

  "남자친구랑 여행 왔는데 혼자 일 때보다 더 외로운 느낌이야. 가끔 안 볼 때 손도 잡고 하면 안 돼?"

  "몰래하는 그 마음이 싫어. 그리고 자꾸 손잡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지? 결국에는 다 들켜."

  "... 들킨 적 있나 봐요?"


  나머지 일행들이 ATM에서 현금을 찾고 있을 때 드디어 은상오빠와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는 고작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터키여행은 이런 게 아닌데. 이번 여행, 내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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