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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 (32)

5-12. 수용과 감사의 힘은 의식을 깨어나게 합니다. 


 젊은 날에는 당면한 목표에 몰두하다 보면 삶을 과정으로 길게 지켜보는 연습을 하기 어렵습니다.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미래로 우울감을 갖기 쉽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기쁨을 느낀다면 의식의 에너지는 성취와 인격의 성장에 밑받침이 되어 줍니다. 내가 선택한 삶을 누구도 완전하게 조건 없이 수용해 주기 어렵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에고를 다스리고 내려 놓아본 사람은 자연스럽게 성장하지만 자아성찰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감사와 성취의 기쁨을 누렸다면 다음 욕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용기와 결단력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깨어난 사람은 진심으로 전체 우주 안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것과 에고가 욕망하는 것의 차이를 지켜보게 됩니다. 실패와 성공의 사회적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성장하는가! 내가 새롭게 창조하고 배움이 있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다가오는 어떤 사람이나 일들을 욕망 없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마음으로 성취 유무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실패에 대한 걱정이나 좌절감 같은 것에서 자유롭게 조금 더 초연하게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가슴 속에는 감사와 기쁨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실제로 의식이 성장하고 깨달음에 가까운 것입니다. 삶 그 자체를 무시하면 어떤 위대한 깨달음도 잠시 왔다 지나가는 체험이 됩니다. 부족한 삶이라도 그 자체로 존중되고 사랑받아야 합니다.    



6. 사랑의 길


(명상의 궁극은 사랑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길을 다시 찾으면 됩니다.)



 이글에서는 삶을 통해 평화와 행복감을 만나는 방법을 지성의 길과 사랑의 길, 명상의 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질과 성격에 따라 쉽게 수용이 되는 길은 사람마다 다르고, 인생의 시기마다 변화합니다. 의식이 주인이 되는 경험은 자신이 무한 확대되어 우주와 합일하는 명상적인 길과 자신이 작아지고 작아져 에고가 사라지는 사랑의 길이 있으며 지성은 두 개의 길에 기본이 되어 줍니다. 지성의 길을 이해하고 내면화하며 나머지 두 가지 방편을 잘 활용해 봅니다. 세 가지 길은 분명하게 다른 것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길을 편의상 구분한 것이므로 서로 섞여 있어 필요에 따라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 바람직할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긍정의 즐거운 길이지만 인내와 이해의 길입니다.


 자신이 본래 갖고 태어난 본래 성품 그대로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순수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초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깝습니다. 삶의 무의미를 달래고 허전한 가슴을 위로하는 방법은 지금 여기 눈 앞에 펼쳐진 것에 감응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습관입니다.

 성찰이 자라 내면에 에너지가 모아지면 삶이 참되어지고 아름다워지며 평화로워지는 순간이 많아집니다. 사랑의 길은 감성과 존재가 합일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함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느낌은 두려움을 없애며 영원한 에너지와 결합하도록 돕습니다. 우린 전 존재와 우주의 사랑 속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길은 수용적 성향이 좀 강한 인격성향에 적합한 방편이며 지금 아기를 키우거나 결혼생활을 하는 시기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외적 육체가 여성이든 남성으로 태어났든 타고난 품성이 부드럽고 따스한 편이며, 수용적이고 예민하다면 이 방편이 쉬울 것입니다.


 여성의 몸이라 해도 독립적인 강인함과 자기 주도적인 인격이며 목적 지향적이라면 명상이나 지성의 길을 기본으로 하며 사랑의 길을 보조수단으로 수용해가는 것이 좋겠지요. 


특히나 사랑의 길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슴챠크라가 발달된 여성적인 사람에게서 가장 쉽게 감응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쉽게 헌신하고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격은 느낌을 중심으로 살며 가슴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고, 타인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돕는 것이 쉽고 관계를 좋아하며 따스한 격려를 좋아합니다. 머리보다는 느낌의 가치와 소중함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사랑을 깊게 이해하고 키워가면 본래의 참나가 기뻐합니다. 의식이 깨어있어 순수를 잃지 않고 살아가니 그 자체로 명상적 삶입니다.



6-1. 이 우주는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자각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우주와 같은 질료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오늘도 지구에는 해가 뜨고 달과 별이 조화를 이루며 꽃이 피고 생명들이 계속 창조되며 유지되고 있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창조되고 유지되고 확장하는 사랑의 힘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인정하든 아니든 우리는 전체 우주와 지극한 조화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생명력과 사랑을 잊고 사는 유일한 존재 또한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사랑과 헌신을 잊지 않고 증오와 파괴의 에너지와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정말 사랑할 때 기쁨에 젖는 순간이 있습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던 사람과 마음을 열게 되었을 때 우린 판단과 분별 대신에 가슴의 따스함으로 가득해집니다.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자신에 대해 그런 태도를 지속적으로 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려 노력하면서 자신에 대해선 그렇게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애정결핍증의 원인은 부모와 어린시절 영향에 기인하지만 사랑의 에너지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사랑의 느낌을 항상 갈망하게 됩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자본주의를 일으켜 세워 온 부모 세대는 사랑과 대화로 자녀를 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의 한계를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삶을 통해 사랑을 발견하고 회복하고 키워가는 길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설명하는 사랑의 길을 편안하게 이해와 성찰로 수용하고, 삶의 기본 틀로 받아들여 살아간다면 어렵지 않게 궁극의 의식과 만나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공포와 불행감이 입력되어있다 해도 성인으로 자라날수록 자유의지로 사랑을 배워 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것이 영혼 즉 참나의 힘이기에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우주 전체가 그러하기에 절대의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외부에 그러한 존재 즉 신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왔습니다. 이제는 각자 내면의 신성에 경배하고 사랑함으로 인간의 가능성이 한층 더 열리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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