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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33)

가꾸어야 자라는 사랑

6-2. 사랑은 가꾸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나무와 같습니다.


 행복은 사랑이 있는 곳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자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랑이란 보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정말로 복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아주 예민하여 척박한 환경과 각박한 마음이 강해지면 사라지고, 자신의 에너지로 돌보지 않으면 잊혀집니다. 사랑스런 꽃, 동물, 아기 혹은 상황과 만났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순간 대상에 몰입되어, 가슴이 환해지고 맑아지는 체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가족이나 연인을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을 느끼며 사랑의 감정이 내면에 피어오르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몸과 마음과 의식이 하나가 되어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생존의 어려움 속에서 감성을 잃고, 거절과 좌절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이 에너지가 반대의 부정적인 마음으로 바뀝니다. 대상에게 거절당했다고 내 안의 본래 사랑의 능력과 느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움이나 후회 등의 감정에 물을 주고 영양분을 주면 그 마음이 대신 자라게 됩니다. 관심을 기울이면 그 마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느낌도 햇빛을 공급해야 자라는 나무와 같습니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에너지를 만나면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런 사랑이 그립기도 할 것입니다. 혹은 자연과 접하거나 애완동물 등 자신의 감성에 어울리는 대상과 교감이 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회복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글귀를 읽거나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서 문득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면 사랑의 완성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호르몬의 작용에서 벗어나 사랑을 함께 키워나가야 하는 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우린 내면의 사랑을 일깨우고 키워가지 않는다면 사회의 풍파 속에서 종종 길을 잃고 외롭습니다.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사랑이 자라도록 햇살과 물을 듬뿍 자신에게 주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며 나름의 성공의 길 또한 열어줍니다.

 절망적인 상황일 때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존재계가 허락한 것입니다. 실수나 실패도 삶의 무한함이나 완전함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계속 고통을 불러들이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칠 기회는 옵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내가 왜 행복한가? 되묻거나 돌아보지 않게 되는 것이 마음구조이기에 의식과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고통과 시련이 옵니다. 잊혀진 사랑의 능력을 알아차리면 잘못된 생활과 사고방식을 수정하고 정견(바른 생각)으로 회귀하는 기회가 우리에게 몇 번은 찾아옵니다. 


 자기 사랑의 길은 실패가 없습니다. 내가 현재에서 감사와 사랑을 느낄수록 이익입니다. 우린 모두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계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것입니다. 우린 모두 사랑받고 사랑할 자유를 지닌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이 없다 해도, 때로 힘든 상황이라 해도 결국은 주변 많은 것들과 상생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6-3. 인간의 마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며, 자기 안에 체험된 사랑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도 영원한 것이 아닌데 타인의 마음이 변했다고 비난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갈등에 기반을 둔 가변적인 것이라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마음이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것은 변화하며 대상을 따라서 옮겨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가변적인 좋고 싫다는 마음이 아니라 참되고 선하게 열려 있는 나의 에너지를 말합니다. 상대가 누구이고 어떤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 살아있게 하는 따스한 느낌이며 기쁨을 누리고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란 단어에 집중할 때 느낌은 모두 다르지만 또한 같습니다. 사랑의 느낌이 아예 없는 사람은 드뭅니다. 부정적인 마음에 짓눌려 있을 뿐입니다.

 내 안에 없는 것과 전생애를 통해 경험하지 못한 감정은 느낄 수 없습니다. 내가 질투의 감정을 알기에 그런 상황이 오면 그 감정이 일어나는 것처럼 내 안에 알고 있는 것이 드러나곤 합니다. 누군가 자극을 하면 튀어오르는 공처럼 작용하게 됩니다. 

 어린시절부터 사랑에 대한 바른 이해와 사랑을 가꾸는 방법을 배웠다면 우리 삶은 한층 더 참되고 행복할 것입니다. 체험된 사랑은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의 본성에 더욱 힘을 더해줍니다.

 깨달음은 거창한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본성대로 사랑 속에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랑의 힘은 부정적인 마음을 내려놓게 하고, 역지사지의 통찰력과 공감으로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게 돕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바라보고 존재 그 자체를 더 인정하며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과 일치시키지 않고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이해와 사랑으로 공감하며 그를 이해하는 도구로 마음과 생각이 작용합니다. 이렇게 본성의 사랑과 행복감에 집중해 살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에 에너지를 주지 않는 훈련이 되면 사랑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의 안경을 쓰고 보면 사랑만 보입니다. 폭력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 방법에 마음이 매몰된 것이며 미움은 사랑을 반대로 표현하는 슬픈 마음이고, 무관심함은 사랑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사랑의 힘을 키워가면 내면의 본성이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삶을 통한 깨달음입니다. 우린 가끔 이런 순간을 맛보지만 종종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자기 사랑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쉽게 사랑의 대상에 집중하는 힘이 자라나 순간순간 회복됩니다.

 의식 혹은 신은 사랑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랑의 위대한 힘과 기쁨으로 우리 인류는 어려운 고행을 하면서도 삶을 희망하고 윤회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때 자식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번지고 더 나아가 자연과 지구 전체의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되듯이 자비의 마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사랑이 성장하면 나누는 기쁨이 가장 크고 완성된 느낌이라는 것을 깨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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