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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40)

살만한 상태란

7-2-3. 3단계, 이제 세상 속에서 살만 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어 과거보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편안해지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합리적이고 명징하게 생각하여 통찰력으로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100%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무기력감으로 오래 자신을 방치하지는 않게 됩니다. 충동적 행위 패턴을 알아차리게 되어 그런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과거 기억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착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의식이 일깨워져 삶 자체가 변해야 기억도 재편되고 긍정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들 때 호흡법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주변과 내가 살아온 과거를 정돈하면 필요 없는 부정적 사념에 직면하는 힘을 기르게 되는 시기입니다. 

 호흡에 전보다 쉽게 집중할 수 있으며 호흡 중에 평화로운 느낌이 강화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생각이 멈추고 있는 순간이 길어진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바스트리카호흡과 쿰바카를 병행하면 고요한 자존과 만나기 쉽습니다. 생각이 멈추며 의식이 드러나는 체험이 직접적으로 가능해집니다. 

 호흡을 의식하다 보면 호흡과 호흡 사이에 무호흡의 상태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들숨이 나오기 직전의 몇 초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때 마음이 멈추고 고요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그다음 단계로 진입이 된 것입니다. 멈춤의 순간의 고요함이 의식입니다.

 여기선 나의 마음과 생각만이 내가 아니라 존재 혹은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본래의 나는 사라진 적이 없었지만 갈급한 욕망과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불안한 생각들이 나라고 알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입니다. 활동적인 다이나믹 명상과 명상을 기반으로 둔 요가, 그리고 춤 명상들을 활용하면 좋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헬쓰나 산책에 호흡을 입혀 명상적으로 만들어지면 일상에서 생활로 확장해 봅니다.

 앞서 말한 지성과 사랑의 길을 이해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며 호흡에만 제대로 집중해도 생활에서는 중요한 행동을 하기 전에 내면을 자각하는 경향이 증가합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 혹은 옳은 판단인가? 숙고하며 나 자신은 왜 선택하려 하고 갈등을 만들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되어 갈등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생각이란 도구가 주인이 되어 마구 날뛰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생각과 거리가 생깁니다. 존재의 중심에서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에서 중심이 잡혀가니 성공과 실패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살펴보고 미리 깨어서 준비하게 되는 것이지요. 결단력이 자라며 실패에 대한 준비가 되어 성공과 실패 혹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볼 수 있으므로 마음의 상처가 작아집니다. 생각이 조화롭게 확장되고 무절제한 상상력과 난폭한 마음의 격한 파동이 줄어들며 중심을 잡아가는 느낌이 자존감을 높여 줍니다. 

 어떤 중요한 삶의 선택들은 다양한 원인의 결과이며 내 의식의 성장을 위한 길이란 신뢰가 생깁니다. 나는 ‘왜?’ 이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집니다. 반면에 불가능하거나 내키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습관이 작아져 욕망이 정돈되고 불필요한 것에는 쉽게 무심해집니다.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자존과 세상에 대한 이해심이 자라니 그동안 잠재된 충동적 마음을 알아차리기에 반복하는 실패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립니다. 사실 우린 모두 그런 성찰을 할 지성을 갖고 있지만 급한 성취 욕구나 타인과 비교하는 잠재의식의 영향으로 실패를 거듭해왔기 때문입니다. 


 3단계에서 사랑의 관계와 경제적 자립 등이 준비되어 있고 여유시간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명상, 요가나 다양한 수행코스를 잘 활용한다면 큰 도움을 받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삶을 구체적으로 앞에 설명한 태도로 바꾸어 가고 있다면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의심으로 게을러지며 삶이 조금 가벼워졌기에 안주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때 환경이 바뀌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인내심과 인내가 많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쌓여있는 것이 많을수록 쓰레기를 버리는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과도 같습니다. 이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던 습관적 상태에서 햇살과 바람을 즐기는 현재에 머무는 실력으로 발전하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향에 관심을 기울여 에너지를 모아주면 어려운 일들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만 개인차가 많습니다. 명확히 외부 환경이나 나의 과거 까르마로 인해 겪어야만 하는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과거보다는 덜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고 잔잔한 사념들이 있다해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판단의 중립 상태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때 대부분 삶이 놀랄 만큼 편안해지고 자기 다운 삶이 열리기도 합니다. 


 1단계에서는 호흡에 집중된 의식이 순식간에 생각이나 마음에 휩쓸리지만 3단계에서는 필요할 때는 호흡 혹은 나의 존재 느낌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나 고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직면해 해결책을 발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도 빨라집니다. 조금 더 의식을 신뢰하게 되면 사고패턴이 유연해져서 아집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먹을 때는 먹는 즐거움을 즐기고, 잠잘 때는 잠자는 즐거움을 맛보며’ 사는 단순함이 살아납니다. 몸과 마음에 짓눌려 살다가 그것이 진정한 내가 아님을 알아채니 이왕이면 현재를 즐기는 본래의 나 즉 ‘있는 그대로의 현존’이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일시적으로 기억력이 나빠지고 집중하지 않는 대상에는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으나 전체적인 우주의식의 느낌과 직감 같은 것이 살아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예민하게 자신을 향해 에너지를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각성이 성장하면 4단계에서 나타나는 근접 삼매 체험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단계는 혼재되어 있어 선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구분한 것일 뿐입니다. 매 단계는 층계처럼 1단계, 2단계로 구별되지 않고 일상이란 수평선에 다양한 모습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원이 섞여 있으니 때로는 마음에 지배당하기도 하고 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방향만 잘 잡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면 결국은 성취하게 됩니다.


7-2-4. 4단계, 더 나아가느냐? 멈추느냐? 


 4 단계에서 대부분 아나하타 챠크라가 활성화되고 마음이란 소를 타고 소를 길들여 집으로 돌아오는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견성 체험을 하는데 사마디와 유사한 상태로 강한 시공을 넘은 편안함과 행복감으로 가득 차는 순간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것을 분별 삼매라 하기도 합니다. 대상에 몰입이 쉽고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거나 내가 사라진 느낌을 말합니다. 사람에 따라 가슴 챠크라 –아나하타챠크라- 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 가슴에 느낌이 살아 있다면 체험이 쉽게 찾아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격검사에서 가슴형이란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높은 것으로 나옵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다양한 창조작업에서 꽃을 피울 수 있고 예민한 사람이 공황이나 우울증이 있다면 극복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독심술, 텔레파시, 예지능력 등이 발달하는 사람도 있고 명상이 깊어질수록 우주의식의 에너지 즉 채널링을 하기도 하는 등 신비체험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순간이 의식되며 생각의 지배에서 좀 더 벗어납니다.


 네 번째 단계의 특징은 또한 마음의 이중성, 즉 옳고 그름을 따지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분별심에 아직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여 괴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선한 사람은 더욱 자비로워지지만 이기적인 마음이 강력해지기도 하는 과정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정심과 행복감을 느끼는 의식이 성장한 만큼 마음이 발동하면 더욱 강력해진 에고가 고집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즉 에고가 없는 텅 빈 순간들의 평정심이 자란 만큼 에고가 강력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이유는 분열된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에 강력한 에너지를 갖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이 색증시공임을 눈치채다 보니 즉 만물이 가변적이며 비어 있는 것임을 느끼게 되어 주어진 현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물에 대한 현실감이 약해져 꿈을 꾸듯 모든 것과 약간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되지만 일상을 자연스럽게 지혜로 해결해 가는 능력도 자라납니다. 이때 당황하기보다는 모든 변화를 기쁘게 긍정하고 지켜보면 존재의 빛이 더욱 드러납니다. 여기서 지성과 선한 마음이 에고의 이기적 욕망을 극복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과 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비슈다챠크라의 활성화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쌓인 쓰레기들을 버리는 자아성찰을 무시한다면 다양한 체험들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힘이 자라 나를 이해하는 만큼 타인과도 공감과 우주원리 안에서 우리의 에너지가 하나임을 잃지 않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의식의 근원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를 더 강도 높게 할 기회입니다. 진리의 말씀과 스스로 극복해야 할 마음을 다스릴 만트라를 생활화하여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으니 놀라운 발전입니다. 삶이 원숙해지며 자연스럽게 삶이 하나 된 흐름을 타며 의식과 함께 살아가는 체험이 가능해집니다. 사람에 따라 가슴챠크라가 활성화 되어 태어난 사람도 있고 인격이 잘 조화를 이룬 지성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때 진리의 참됨에 깊이 몰두하여 우주와 하나 된 평화로움을 인지하면 이 긍정적 체험이 사라지지 않는 의식이며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해도 늘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때 여여한 상태로 전환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배우고 삶의 질을 높여가며 조화를 이루는 실천적 태도가 명상입니다,

 경계해야 할 것으로는 자기 체험만을 강조하며, 교조적으로 자기 이론만 옳다고 주장하는 단체나 사이비들입니다. 일부 나르시스트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착각을 하고, 이 과정에서 체험한 성령체험이나 빛의 체험을 부풀려 사람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분열감에서 일치감의 희열을 느끼므로, 자신감 있게 남을 설득하는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최면으로 몰입하는 능력과 자신의 느낌을 지나치게 맹신하여 중심에서 나오는 힘으로 타인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는 사이비 종교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비어질수록 타인의 마음이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심리전을 펼쳐 힘 없는 다수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이는 자신의 에고 상태를 전지전능한 신의 상태로 자기 입력하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연쇄살인마들이 죄의식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의 뇌 구조와 아주 비슷해진 것입니다. 나라는 에고가 완벽한 느낌 즉 몸과 마음과 의식이 하나가 된 상태이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남 위에 군림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사랑 대신 나의 이익이 중심인 깨우침은 거짓이며, 다양한 신비체험은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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