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쉼의 언어

다시 나를 품다

by 노크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고속버스가 출발하자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순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퇴직을 했고, 이사를 했고, 한 달간 딸이 있는 런던에서 지내다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다시 순천으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난다.

창밖의 햇살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고요했고, 물들어가는 단풍은 평화로웠다.
앞으로 네 시간을 더 달리면 순천이다. 이렇게 빨리 다시 그곳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 6월 말,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순천 쪽은 돌아보기도 싫었다.

‘한참 지나서야 한번쯤 가겠지’ 생각했는데, 6개월도 안 돼 다시 그 길을 달리고 있다.

마음이 참 묘하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익숙한 간판과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순천.


도착하자마자 오랜 직장 동료가 반갑게 달려와 나를 안아주었다.
그 친구와 함께 늘 가던 추어탕집으로 향했다.
들깨 넣은 토란대나물, 오이나물, 잘 익은 알타리김치, 엄마가 해주시던 가지나물까지—순천의 밥상은 여전히 넉넉했다. 사실 추어탕보다 그 반찬들이 그리웠던 걸지도 모른다.

두 번, 세 번 더 달라해도 마다하지 않는 그 인심까지 참 고맙다.

친구는 굳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며 나를 붙잡았다.
새벽예배를 다녀온 그는 김밥을 싸고, 어묵탕을 끓이고, 계란찜에 따뜻한 우유까지 내왔다.
그 따뜻함에 마음이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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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수영장에서 만나 친해진 이들이다. 우리는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큰 소리로 웃었다.
추석쯤에 주무시듯 돌아가신 시어머님 상을 치렀고,

넬모레 제대를 앞둔 아들을 바라보는 든든함과

남은 우리의 삶에 성실하고 건강하자는 수다를 나누었다.
노을이 물드는 와온 해변을 걸으며, 우리는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저녁을 먹으러 여자만길을 따라 여수로 향했다.
흙두부 보쌈, 청국장, 짬뽕순두부

—한 달간의 런던 생활로 지친 내 몸과 마음이 그 한 끼에 위로받는 듯했다.
늦은 밤까지 수다는 이어졌지만 이별은 아쉬웠다.



다음 날 새벽, 동천을 걸었다.
어둠이 걷히자 도시가 천천히 얼굴을 드러냈다.
벚꽃이 흐드러졌던 봄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을 달리던 그때도
생각이 많은 날에도 터벅터벅 걸었던 이 길.
모든 풍경은 그대로였다.

순천에서 살던 10년.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잠시 서울여행을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했다.
서울로 올라올 때는 다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렇게 다시 와 있다니. 감정이 간사한 걸까?



아니, 그저 시간이 고통을 다스렸고,
그 자리를 따뜻한 사람들이 채워준 덕분일 것이다.

점심엔 또다시 친구와 순댓국을 먹었다.
콩나물과 청양고추가 들어간 순댓국은 얼큰하고 시원했다.
그릇을 다 비우며 문득 생각했다.

'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그리움과 위로, 용서와 사랑이 함께 끓어오르는 한 그릇의 힘이 있구나.'

순천을 떠나며 창밖을 봤다.
손을 흔드는 친구의 모습이 버스 창에 아른거렸다.


런던에서의 한 달이 설렘의 시간이었더라면,
순천의 2박 3일은 따뜻한 ‘귀향’이었다.


이 여행은 내게 회복괴 쉼의 언어가 되어주었다.


10월 한달간을 런던과 빠리, 그리고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다 돌아왔습니다.그러느라 쉼의 언어를
제 때에 발행하지 못했습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내서 마무리를
해봅니다.그리고 새로운 글을 쓸 용기를 또 가져봅니다.차가운 날씨에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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