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걸었다.

by 노크

퇴직 후 맞는 여유로운 주말. 날은 유난히 덥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가보자.’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한 후, 서울에 올 때마다 한 코스씩 걸어왔던 서울 둘레길.

아직 다 돌지 못한 몇 구간이 마음에 남아 있다.

오늘은 수락산과 불암산 코스를 걷기로 했다.한때는 순천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와서 걸었지만,

이젠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그럼에도 버스에 오르며 마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오늘도 잘 걸을 수 있을까? 길은 험하지는 않을까? 이 더위에 걷는 사람이 있을까?’


출발은 서울 창포원. 이미 몇몇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옮긴다.

태양은 뜨겁고 공기는 무겁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도 가보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자.’

숲 터널을 지날 땐 바람과 나무들이 반갑다. ‘역시 오길 잘했어.’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어느새 몸은 땀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괜히 나섰나?’고민도 들지만,

이미 시작한 걸음. 적어도 당고개 공원 갈림길까진 가보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킨다.

소담하게 펼쳐진 숲과 마을, 빌딩들. ‘그래, 이 맛에 걷는 거지.’다시 한 발을 내디딘다.

구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진다. 아까 함께 출발한 젊은 두 여성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혼자 걷는 길은 때때로 막막하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다.서울 둘레길을 걸을 때도, 지리산을 돌 때도, 자전거로 먼 길을 달릴 때도…

늘 혼자였다. 외롭고 고독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혼자라도 걷는다.

어쩌면 혼자라서 더 깊은 나를 만날 수있는지도 모른다.


걸을 때마다 자주 묻는다.

‘나는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가?’

처음 길을 나섰을 땐, 상실감과 무력감 때문이었다.그 후엔 원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듯 걷고 또 걸었다.

하늘과 나무에게 말을 걸듯, 속 이야기를 흘려보냈다.지리산을 돌고, 서울 둘레길을 걷는 동안 몰랐던

나의 목소리를 수없이 만나왔다. 그건 미처 삭이지 못한 감정이었고, 기분 좋은 중얼거림이었고,

때로는 간절한 기도였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그 이야기를 땅이, 나무가, 하나님이 들어주셨음을.


이제는 그 이유조차 흐려진다.아이들은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고,나 또한 퇴직 후 쫓기듯 살아갈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길을 나서는 건 뭘까?
이 고독의 시간이 내면의 나를 마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산길에서 마음속 풍랑은 잔잔해지고,오르막을 넘을수록 호흡은 깊어지고,

풀내음과 흙냄새는 가파른 길도 기꺼이 걷게 만든다.

대나무 숲 터널을 지나니 끝이 보인다.남은 거리 4km, 3km… 돌무더기,

전설 깃든 바위들을 지나며 문득 생각한다.

‘이 숲은 수 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다 품고 있구나.’


나 같은 사람들이 두고 간 사연들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숲은 모든것을 조용히 받아주고 안아준다.

마치 엄마 산소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처럼, 갈 때마다 나를 가만히 안아준다.마치 엄마처럼


저 만치 빨간 스탬프함이 보인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었던이 만날 수있었다.

가방을 베고 평상에 누우니, 하늘이 눈앞에 있다.말간 하늘에 구름은 미동도 없다.

그 위로 스쳐가는 바람이 오늘 하루를 다독인다.

인생 전반전을 끝낸 나.후반전도 기대가 된다.


산 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 오늘도 나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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