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늘 죄인
자전거를 세우고 모자를 벗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화면에는 아들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는 능청을 떨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연락이 없어 내심 서운한 마음이 있었기에
‘누구세요?’에 그 감정을 살짝 얹었다.
“네, 저 아들 하*이에요.”
“아, 나에게도 아들이 있었나요?” 나는 계속 감정 장난을 했다.
아들은 내 장난을 알면서도 끝까지 맞장구를 쳐준다.
“어쩐 일이세요?”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제가 너무 많이 아파요. 감기 걸린 것 같아요. 엄마밥이 먹고 싶어요.”
‘어머나, 세상에…’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장난 섞인 목소리는 사라지고 어느새 목이 멘다.
“어머 많이 아팠구나? 엄만 그것도 모르고....”
“네.” 아들 목소리도 젖어 있었다.
서둘러 머리를 감고 샤워도 물만 대충 뿌린다. 시간이 없다.
아들은 천천히 오라고 했지만 마음이 급하다.
퇴직 후 쉬고 있는 엄마에게 왜 이제야 연락을 한 건지 속상하다.
옷을 입으며 냉장고에 있던 불고기, 아들이 좋아하는 만두,
마침 호박죽을 쑤려고 불려 두었던 찹쌀도 가방에 넣는다.
‘에구, 엄마라는 사람이… 아픈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이나 드러내고.
정말 못났다’ 스스로를 책망한다.
두 번의 환승과 십여 분의 걸음을 거쳐 아들 집에 도착했다.
마음은 이미 먼저 와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계속 뛰고 있다.
미리 주문해 둔 죽을 찾아 기다릴 틈도 없이 아들 집으로 들어간다.
아들은 혼자 산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서, 그 이후로는 줄곧 혼자였다.
서른에 가까운 아들은 사진을 찍는 초년 작가로 밤샘 작업과 추운 날 야외 촬영도 많다.
그래서 늘 잔소리를 한다. 건강 조심하라고.
집은 어둡고 눅눅하다. 쾌쾌한 냄새가 난다.
사람이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는 녀석을 깨워 죽 그릇을 내민다.
“죽 먹고 약 먹자.”
“언제부터 아팠어? 왜 미리 전화 안 했어?”
어젯밤 밤샘 작업을 하고 퇴근할 때부터 이상했단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들었고, 너무 아파 전화할 기운조차 없었단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오늘 전화를 했다고.
얼마나 아팠으면 전화할 생각조차 못 했을까. 퀭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미어진다.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는 남편의 목회를 위해 순천으로 이사했다.
아들은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약 10년을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몇 년 전에도 아들은 감기로 너무 아프다며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버스 시간표를 붙들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슴을 졸이며 밤을 지새웠다.
올라가는 데만 여섯 시간이 넘는다.
아플 때는 약을 먹고 치료하면 된다지만 아플 때 혼자 잇는 건 너무 슬프고 처량하다.
아들은 중증 아토피로도 오래 고생했다.
밝고 건강하던 아이의 삶을 아토피가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 고통을 바라보는 나는 내 피부를 모두 바꿔서라도 그 아픔을 대신하고 싶었다.
그마저도 떨어져 살며 바라봐야 했던 시간들.
그래서 아들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늘 죄인이 된다.
죽 한 그릇을 비우고서야 아들이 말한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이번엔 진짜 많이 아팠어요.”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어깨와 허리, 다리를 주물러 준다.
“엄마, 시원해요.”
“엄마 손은 약손이야.”
“맞아요. 다 나은 것 같아요.”
아토피로 고생하던 시절에도 그 아이의 몸을 이렇게 문질러 주곤 했다.
다 큰 아이였지만 엄마의 거친 손이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해주었나 보다.
아이를 재우고 시장에서 죽 끓일 소고기와 과일을 산다.
집에 돌아와 살림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아이는 깨지도 않고 잔다.
‘뭐라도 좀 먹으면 좋으련만…’
자는 얼굴을 몇 번이고 바라보다가 조용히 나온다.
다음 날 병원에서 A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연일 뉴스에 나오던, 그 독하다는 독감이다.
아들 같은 차림의 청년들이 대기실에 여럿 보였다.
서른이 다 된 아들 옆에 나이 든 엄마가 있는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 병원을 다녔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곁에 있고 싶었다.
소고기죽을 끓여 주자
“이제 밥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많이 괜찮아졌어요.”
사과도, 귤도 먹는다.
그래도 반밖에 못 먹는 모습이 또 서운하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세상 살기 험하고 힘들지. 그래도 엄마가 항상 곁에 있을게.’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아들이 이불을 덮어 준다.
“추우실까 봐서요.”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못한 일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 아들 옆에 사과 반쪽과 귤을 올려 둔다.
다행이다. 이만해서.
새 밥을 고슬하게 지어 두고
메모를 남기고 조용히 현관문을 닫는다.
"너 자는 것 같아서 안 깨우고 엄마 간다.
밥 맛있게 잘 됐어. 일어나면 먹고 기운 내라.
아프지 말고. 사랑한다. "
한 시간쯤 지나 문자가 왔다.
“고생 많으셨어요 엄마 덕분에 빨리 나은 것 같아요
저도 사랑해요 ”
눈앞이 흐려서일까?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