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에서
14일간의 여행이 어느새 종착역에 다다랐다.
누구 하나 아프지도 않고, 잃어버린 물건 하나 없이 무사히 마친 여정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는지, 마지막 날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있었지만
그것조차 끝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친구 부부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나는 딸과 함께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2주 후면 나도 딸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서울로 돌아간다.
그들을 보낸 뒤, 딸과 나는 기차를 타고
영국 남부 브라이튼의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로 향했다.
5명이 함께 다닐 때는 북적이던 여행이 둘만 남으니 훨씬 가볍고 간편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버스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영국 농가의 고즈넉한 풍경이 창밖으로 이어졌다.
초원에서 풀을 뜯거나 졸고 있는 양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든 말든 무심했는데,
그 무념무상이 어쩐지 부럽기도 했다.
세븐 시스터즈는 이름처럼 일곱 개의 하얀 석회 절벽이 이어진 곳이다.
영화와 드라마, 화보에 자주 등장할 만큼 유명한 곳.
초원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인 절벽이 나타나는데,
바다가 들판을 조금씩 잠식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200m나 더 육지가 있었다니, 자연의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이 겸손해진다.
흰 절벽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 쓰던 분필의 재료가 떠올랐다.
석회가 바람과 파도와 시간 앞에서 깎이고 다듬어진 끝에 만들어낸 풍경…
그 앞에 서니 마음이 ‘툭’ 하고 열리는 기분이었다.
근처 카페에서 따뜻한 홍차 한 잔과 스콘을 먹었다.
어린아이를 챙기듯 크림과 딸기잼을 듬뿍 올려 내게 준다. 한입 베어문다. 맛있다.
남편을 먼저 보낸 마음의 허전함이 딸의 다정함에 녹아내니는 것 같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 앉아 푸른 초원과 하얀 절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얼굴에 닿고 하늘의 구름이 느긋하게 흘러갔다. 그제야 떠올랐다.
‘여행은 이런 거지…’
우리는 10일 동안 런던과 파리를 정신없이 다녔다.
좋은 곳을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딸은 늘 서둘렀고,
우린 그 마음을 알기에 기쁘게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을 바라보며 쉬어가는 순간도 여행의 일부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이게 꿈인가 싶다.
파도 소리가 궁금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잔잔한 바다는 소리 없이 반짝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 잔잔한 파도가 절벽을 200미터나 깎아냈다니.
“파도는 사랑을 고백하듯 매일 다가가는데, 절벽은 자꾸 도망치는 건가?”
속살을 드러낸 하얀 절벽이 문득 안쓰러워 보였다.
날씨가 조금 흐려 아쉬웠지만, 오히려 충분했다.
먼저 귀국한 이들에게 나 혼자 너무 좋은 모습을 보고 가는 것이 미안할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런던으로, 그리고 또 하나의 ‘집’
브라이튼 시내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딸의 마음도 고마웠지만,
남편이 떠나고 긴장이 풀린 탓인 자에 나는 쉬고 싶었다.
간단하게 버거와 감튀를 먹고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을 타고 딸의 집이 있는 골더스 그린(Golders Green)에 도착하자
마치 내 집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며칠을 오갔던 역이라 친숙하다.
앞으로 2주간은 딸과 함께 지낼 예정이다.
따로 숙소를 잡기엔 비용도 부담되고 혼자 있으면 더 외로울 것 같아 함께 머물기로 했다.
딸과 함께 지내는 **언니라는 분의 가족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감사 인사를 담아 꽃을 전했고, 그분은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역국까지 끓여주셨다.
‘정말 세상에 이런 정이 또 있을까…’
타국에서 먹는 미역국과 김치, 멸치조림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따뜻했다.
이제 여행의 절반, 앞으로의 절반
한 달 여행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 귀한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채워갈까.
다시 오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이 시간들.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마음 깊이 저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