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와의 만남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와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기 전,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 딸이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하나씩 사오며 맛보라 한다.
세계 빵 대회에서 1등을 한 집의 빵이라며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맛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리네 입맛엔 한국 빵이 더 나은 것 같았다.
오르세 미술관이 보이는 곳에서 먹는 점심은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화사했고,
딸의 세심한 선택 덕에 프랑스 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달팽이 요리까지 곁들여진 완벽한 한 끼였다.
오르세는 처음이라 마음이 설렜다.
루브르, 내셔널 갤러리, 프라도는 가보았지만 왜인지 오르세는 늘 아껴두던 공간처럼 느껴졌다.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미술관 안에 들어가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한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였다.
전통적 신화 속 여신처럼 이상화된 누드가 아니라, 그 시대 현실의 여성을 정면으로 그린 그림.
그 도발적 시선은 당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조롱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올랭피아는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되었고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다.
신화를 버리고 현실을 그렸다는 것,
예술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했다는 점에서 그는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다.
예술가들은 그림으로, 글로, 음악으로 사회와 시대를 말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읽히고 다시 해석된다.
5층, 나의 심장이 가장 두근거렸던 곳
5층에는 내가 사랑하는 화가들이 모여 있었다.
고흐, 르누아르, 모네, 고갱, 드가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건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앞에 서자 전율이 흘렀다.
“아… 이 그림이.”
별빛이 비치는 강, 조용한 도시의 불빛, 손을 잡고 걷는 연인의 모습.
고흐는 이 어두운 밤을 두려움의 시간이 아니라
감성의 시간, 위로의 시간으로 그려냈다.
고달픔과 가난, 조롱과 고독 속에서도
끝까지 ‘사람답게’ 살아보려 했던 그의 생애를 알고 있기에
그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사랑하는 화가.
삶도 그렇다.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의 고난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다.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감,
드가의 날아오를 듯한 발레리나들,
모네가 하루의 빛을 좇아 그린 루앙 성당,
그리고 가장 익숙한 밀레의 <만종>.
오르세 미술관 안에 마치 나와 그림만 있는 듯했다.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고흐와 르누아르, 모네가 내 옆에 서서
함께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내일 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보고 떠나기엔 너무 아쉬운 공간이었다.
오르세를 나와 루브르 광장으로 걸었다.
아쉽지만 들어가지는 못해 유리 피라미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사진을 찍었다.
어스름 저녁, 에펠탑 뒤로 노을이 내려오고 있었다.
남편과 딸과 함께 파리 한복판에서 노을을 바라보다니.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더 바랄 게 없었다.
간단한 간식을 챙겨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갔다.
노래하고 춤추며 에펠탑 점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엔 가을밤의 낭만과 자유로움이 가득했다.
나도 그랬다.
파리의 밤이 참 아름다웠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한 마디.
“배고프다. 빨리 숙소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
친구 남편의 한 마디에
파리의 감성은 순식간에 한국식 현실로 돌아왔다.
그마저도 웃기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