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강 위에서

그 밤,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by 노크



며칠 안 되는 여행 일정에 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행기 대신 유로스타를 타고 해저 터널을 달려 몇 시간 만에 프랑스에 닿았다.

국경을 넘는 일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영국과 전혀 다른 공기의 파리는 낯설고도 설렜다.

서둘러 센 강으로 향했다. 마지막 유람선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막차에 올랐고, 가을밤의 센 강변은 연인들과 관광객으로 들떠 있었다.

배가 천천히 돌아 처음 자리로 돌아왔을 때, 에펠탑에 불이 켜졌다.

말로만 듣던 그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자 마음이 생각보다 크게 흔들렸다.

런던아이와 빅벤을 볼 때보다 더.


유람선에서 내려서도 감동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딸은 젤라또와 커피를 들고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청년이 있었고, 음악에 이끌린 한 부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췄다. 국적도 나이도 달랐지만, 그 밤만큼은 모두 같은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런던과 파리는 참 다르다.

비와 바람이 잦은 런던이 묵직하다면, 파리는 밝고 생기 있다.

날씨 때문일 수도, 도시가 품은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건,

이 밤의 파리는 나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행은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금’을 미뤄두며 살아왔는지도 돌아보게 한다.


남편의 손가락 사이로 내 손을 끼고 그의 어깨에 조용히 기대 본다.

얼마 만일까, 이런 여유와 평안함은.


우리는 늘 미래의 행복을 붙잡으려 애쓰며 현재의 작은 기쁨을 흘려보내왔다.

그런데 이렇게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던 행복이 아니었을까.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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