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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08. 2022

'엄마'라는 정체성의 무게

아기 재우다 생긴 일

지난 밤, 10시에 아기를 재우려고 대치하던 중 어둠 속에서 아기가 말했다. “아빠가 좋아.” 억지로 재우는 엄마에 대한 반발심에서든, 엄마보다 잘 놀아주는 아빠가 불현듯 떠올라서든, 아기의 말에 별다른 의미부여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순간 화나고 마음이 찢어지더.


‘그래 나도 너랑 둘이서 집 지키는 거 지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런 날이고, 내일도 그럴 예정인 오늘 같은 날이면 특히 말야. 너를 보는 게 끝없는 형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나 역시 너보다 아빠가 말도 잘 통하고 좋아.’


불안과 우울이 반복되는 요즘, 마음의 화살은 기어이 아기에게 향한다. 여기까지 내면의 소리. 아기는 죄가 없는걸.


아기의 말에 “(우는척)엄마는 안 좋아?ㅠㅠ” 애정을 구걸하며 “엄마도 좋아”라는 답을 받아내고, “엄마랑 아빠는 은호를 아주아주 많이 좋아해”라며 약간 교과서적으로(?) 대응하니 아기는 “나도 사랑해”라고 말하고 곧 잠이 들었다.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말에 ‘사랑해’로 답하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


하지만, 시방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엄마'라는 정체성 하나만 남는 거 싫어서 엄마역할은 최대한 힘빼고 루즈하게 추구했건만, 남는 건 '엄마역할도 제대로 못하는 나'다. 이렇게 모성이라는 권력은 언제 어디서든 강하게 나의 정체성을 통과한다. 균형이고 나발이고 상태 안 좋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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