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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1. 2023

'아내가뭄', 누구도 이런 아내를 가질 권리는 없다

서로에게 아내가 되어주는 관계는 불가능할까

지난 주말 동안 우리집 아기와 한 살 위 조카가 있는 언니네 집에서 기거하며 공동육아를 했다. 외동인 두 아기가 만나니, 부모가 놀아주지 않아도 되는 ‘개꿀’ 상황이 펼쳐졌고(브라보!) 장난감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있을 때만 적절히 중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틀을 내리 있으니 언니 부부의 고구마 백만개인 가사분담 현황을 1열 직관하게 되었는데, 종래에는 작년에 읽은 책 <아내가뭄>이 떠오르면서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현실을 참여관찰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참여관찰’인 까닭은 이미 공고한 그들의 불균형한 분담에 내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차마 '참교육'할 수는 없잖아) 손님이지만 설거지 정도는 전담하는 것으로 언니의 가사노동 부담을 더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기들은 둘이서 잘 놀았고, 언니는 그 모습을 바라보곤 흐뭇해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하루종일 청소와 빨래, 곳곳을 청소하고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제공했으며(사육당하는 줄) 아이까지 집중해서 돌보지 않고 가사노동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만으로도 큰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비하면 형부가 한 노동은... 매 끼니 요리를 하긴 했으나 대부분은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조리과정에 수반되는 뒷정리는 내가 다 했으니, 요리의 완성이 ‘설거지’라는 점에서 그마저도 반쪽짜리 쉐프였고, 심지어 형부가 다음 끼니도 책임지도록 동기부여 하기 위해 음식에 대한 찬사를 한참씩 늘어놓아야 했다(물론 맛있었음).


책 <아내가뭄>은 여성이 전업주부든 맞벌이든, 심지어 외벌이인 상황에서조차,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많은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호주의 현실을 다룬다. “오스트레일리아 가정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행동양식은 분명히 있다. 여성, 특히 엄마가 남자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이다. 여자들은 전일제 근무를 할 때조차 남자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백수일 때조차 여자들보다 집안일을 더 적게 한다. 이것이 아내 가뭄의 이상한 현상이며 표면적으로도 우리를 확고부동하게 움켜잡고 있다. 평균 오스트레일리아 가정에서 여성은 전업주부가 아닌데도 전업주부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전업주부와 결혼하지 않았을 때도 전업주부와 결혼한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아내가뭄>(218)


저자는 말한다. 그 누구도 이런 아내를 가질 권리는 없다고. 더 나아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웃프다. “청소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청소일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먼지를 아예 털지 않으면 된다”(!)고. 가사노동을 주체적으로 수행해본 사람만이 아는 진실은 가사와 육아에 있어서 ‘분담’이 가능하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점이다. 살림을, 그리고 한 존재를 책임지는 현실에 있어서 ‘분담’이라는 깔끔한 용어는 유니콘일 뿐이다.


많은 남편들이 와이프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분담이라고 착각하는데, 그 일을 시키는 와중에도 여성들은 두뇌회로가 끊임없이 ‘풀가동’ 중이다. 그에 비하면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가.


“남편은 시키는 거만 하잖아요, 주체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근데 엄마의 머릿 속엔 애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 담에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먹을 거 만들고 모든 계획이 다 있고 거기에 수반되는 실행 중 하나를 맡기는 건데...(후략... 대략 그것조차 제대로 안 한다는 요지로 오픈톡방에서 만난 육아동지의 푸념 인용)" 물론 나 역시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머릿 속 한켠에는 내일 아침 메뉴에 대한 두뇌회로가 가동 중이다. ‘소세지는 엊그제 줬고, 어제는 생선을 구워줬으니 내일 아침은 오랜만에 계란후라이를 줘야지’라고.


*참고로 우리집에는 ‘가사분담’이라는 허구의 개념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컨디션을 감안해 누가 더 하고 덜 하는, 그리고 대체로는 동등하게 “먼지를 아예 털지 않는” 편으로 서로에게 '아내'가 되어주고자 노력하는 관계다. (남편자랑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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