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라는 지지대

by 트와일라잇

방학이 즐거운 3학년과 5학년이 된 두 아이가 재잘거리며 놀고 있다. 나는 출근길, 두 아이가 집에서 보낼 시간이 걱정이 된다. 종종거리며 점심과 간식을 준비하는데 흔쾌히 잘 지낼 거라고 말하는 큰 아이를 내심 믿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다정히 잘 지낸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그저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생각난 그 모습, 언니를 떠올린다.


‘그래, 언니가 있었지!’


몇 달 전, 언니가 제주에 왔을 때 일이다. 친정 엄마께서는 집 정리를 하시면서 우리의 물건들을 처분하고 있었다. 우리 삼 남매의 대학교재, 전공 서적, 나의 초등 피아노 반주 책까지 다양한 것들이 쌓여 있었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마음이 그 모든 책들을 고이 모아 두고 있었나 보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던 것은 언니의 일기장이었다. 수십 년의 이사를 하면서도 우리 일기장 하나하나 건사한 엄마의 정성 덕분에 남게 된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일기장은 진작에 결혼 후 우리 집으로 옮겨졌다.)


언니의 일기장들을 엄마와 언니와 셋이 앉아서 펼쳐 보았다. 하루하루의 기억이 감정의 충만함과 미화로 가득했던 나의 일기장과는 참 다른 색이었다. 언니의 일기장은 참 질서 정연했다. 참고로, 내 일기장 속 글씨체는 매일매일이 달랐다. 신나게 논 기쁨의 날에는 기쁨의 글자가 쓰였다. 동생과 싸운 분노가 치미는 날에는 분노의 글자체가, 일기를 꾸역꾸역 억지로 쓰던 날에는 구불구불 내 마음이 느껴지는 글씨들이 일기장에 가득했다.

감정 충만한 나의 일기장 글씨들과 달리, 언니의 일기장 글씨들은 늘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늘 비슷한 모습으로, 바르게 정자체로 쓰려고 노력했던 일기 속 글씨체들이 언니의 성품을 말해주고 있었다. 글씨만큼이나 내용 또한 늘 정갈하게 정리와 분석이 되어 있었다.


나와 같은 날의 일기를 비교해 본다면 이런 식이었다.

나의 일기는 이렇다.


“아빠가 퇴근길에 빵을 사 오셨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아빠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빵을 먹었다. 뜻밖에 빵을 먹으니 신이 났다.”


같은 날의 언니의 일기는 사뭇 그 색이 다르다.


“아빠가 퇴근길에 800원짜리 크림빵을 세 개나 사 오셨다. 이 빵을 사려면 2000원이 넘는 돈이 들었을 텐데, 빵을 사 오신 아빠께 감사했다.”


또 하나의 특징, 언니의 일기는 숫자가 가득했다. 내 일기장에는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감동이 가득 적혀있다면 언니의 일기장에는 숫자가 늘 함께였다.

시험을 본 날의 일기도 참 달랐다. 내가


“시험을 봤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반장인 00 이가 나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다. 다음에는 시험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라고 일기를 썼다면, 언니의 일기는 좀 더 분석적이었다.


“어제 중간고사를 봤다. 국어는 **점, 수학은 @@점, 사회는 00점 , 과학은 oo점으로 평균은 00점이다. 재은이는 00점을 맞았다고 하고 친구 **이는 **점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부터는 국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이 중에 누가 더 공부를 잘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나?

언니는 어릴 적부터 동네에 소문난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등수를 받아 오기도 했고, 초등학교 시절 언니의 성적표에는 ‘수’만이 존재했다. 오죽하면 내가 선생님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받는 주제가 비슷했다.


‘너희 언니가 00이니? 언니 참 공부 잘하더라.’


그런 언니와 늘 비교당하는 나는 늘 부끄러웠고 서러웠으며 눈에 띠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는 그저 언니가 머리가 좋고, 성격이 꼼꼼해서 공부를 잘한다고만 생각했다. 나도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인데,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42살의 내가 언니의 일기장에서 발견한 것은 언니의 삶에 대한 정성과 한결같은 성실함이었다. 나는 ‘그토록 한결같은 노력을 한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마음이었다.


언제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 삶을 만들어온 나에게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삶의 성취가 없었기에, 늘 세상이 던져주는 기준에 맞추기에 급급했다. 스스로에게서 오는 정성이나 자부심은 없었으니 늘 대충과 급급의 연속이었다. 40살이 되어, 삶이 너무 힘들다고 내게 말을 걸어올 때야, 뒤돌아볼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들. 내가 남들에게 보이는 나로만 살아왔다는 사실과 그것조차도 열심히 아닌, 대충이었다는 뼈아픈 사실들이다.


무엇보다 언니가 돈을 소중히 여겼던 것을 일기를 보면서 이번에 일기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정확히 기록하고 착실하게 사용하고 저축하는 습관을 가진 언니의 모습은 하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기록하는 습관, 그것이 언니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참 놀라웠다. 언니랑 한방을 10년 이상 쓴 나인데도, 언니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삶을 살아왔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욱 신기했다. 자책 너머 새로워지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요즘.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갈 때쯤, 언니의 일기장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삐죽거리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곧은길의 이정표가 되어주며 동무가 되어주었던 언니란 존재의 고마움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너무나도 고맙다. 늘 곁에 있었음에도 몰랐던 언니의 성실함을 일기장으로 만나던 날, 나는 역시 동생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깊은 반성이 몰려왔다.


생각해보면, 내 삶의 즐거운 순간에 늘 언니가 있었다. 책을 읽으러 설레며 아현동 도서관에 걸어가는 길에 엄마한테 받은 용돈을 잘 챙기고 동생들을 보살피던 언니가 있었다. 부모님 없이 방학이면 제주로 여행 오던 비행기 옆 자석에는 늘 차분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주던 언니가 있었다. 엄마, 아빠가 부부 싸움하고 괜히 슬프고 무서워지던 밤, 그 긴 밤의 잠자리에는 같이 울어주는 언니가 있었다. 공부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열심을 내며 공공도서관 열람실에 들어가기 위해 새벽처럼 줄 서던 노원구 중계 도서관 앞에도 언니가 있었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에 맞추어 대학교를 선택하면서도 내색 한 번 안 하고 웃어주던 언니가 있었다.


때로는 죽을 듯이 싸우면서도 큰길을 걸을 때마다 동생 손을 꼭 잡아주는 큰 아이, 엄마가 없는 날도 동생이 안심할 수 있게 잘 챙겨주는 그 아이 덕분에 언니를 다시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삶이 내게 다시 주는 기회 앞에서, 나 자신을 위해 정성을 쏟고 한결같은 성실함을 만들어 보자고, 언니라는 지지대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어본다.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잊고 있던 수많은 은인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누군가에게 언니가 되어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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