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트에서 과자 묶음을 샀다. 성장기라 갈수록 식욕이 느는 첫째와 유난히 짠 과자를 좋아하는 둘째 생각을 하면서 고른 간식이다. 정작 두 아이보다 과자를 먼저 깐 것은 나이다. 4개의 과자 중 내가 고른 건 새우깡.
‘새우 비린내 때문에 아이들은 먹지 않을 테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새우깡을 깐다. 늘 봐도 반가운 새우깡을 보면서 남편에게 조잘거린다. 이 새우깡은 나에게 특별한 과자라고.
때는 1983년, 35년도 더 지난 일이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직전의 일이라고 하니, 아마도 나는 3살, 생후 30개월 정도였던 때 일인 것 같다. 서울에 놀러 온 막내 외삼촌이 언니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다. 삼촌의 손을 잡고 외출하는 언니가 마냥 부러웠다.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언니와 삼촌을 따라가기로 한 나는 무작정 엄마의 핸드백을 메고 무작정 몰래몰래 길을 따라갔다.
그 당시 우리는 서울 종로에 살고 있었다. 큰길을 한참 따라가다가 언니와 삼촌을 잃은 나는 어느 큰 횡단보도 앞에서 길 건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작은 아기가 계속 길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어른이 나를 경찰서에 데려다주었다.
평범한 집에는 전화기가 없던 시대이다. 엄마는 만약을 대비해서 나에게 아빠가 다니시는 사무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나는 집을 묻는 경찰 아저씨에게 용케도 아빠의 사무실 전화번호와 아빠의 이름을 말해주었고, 퇴근하며 나를 데리러 온 아빠에 의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경찰서에서 기다리던 시간에 경찰 아저씨가 내 핸드백에 새우깡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새우깡을 먹으며 나를 찾으러 온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편, 내가 사라지자 우리 집과 동네에는 난리가 났다. 엄마가 여기저기 나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이에 아빠가 경찰서에서 사무실로 연락이 와서 나를 찾았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동네의 화제가 되었다. 3살 어린 아기가 아빠 사무실 전화번호를 외워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고, 동네에 신동이 났다고 큰 소문이 나서 구경을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무심하게 들어왔던 이 이야기. 엄마는 이 이야기를 때로 자랑스럽게 하셨다.
“재은이 너, 신동이라고 동네에 소문났었어. 구경 왔었지.”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자랑스럽지 않고 한없이 부끄럽고 그만 듣고 싶어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은 ‘나의 숫자 기억력에는 이유가 있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출근길에 차량 번호를 외우는 다소 신기한 버릇이 있었다. 약간의 강박스러운 면마저 있는 버릇이었다. 다만 나 스스로도 ‘좀 특이한 강박이야.’라고 여기는 정도의 버릇이었다.
40살이 될 즈음, ‘내면 아이 치유’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유 없는 우울함과 절망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내면의 소리…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 살고 싶어, 나 살고 싶어.’라는 말을 하는 내 마음이 나도 너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내면 아이에 대한 강의를 듣고서 불쑥 떠오른 기억이 바로 3살 때의 기억이다.
시작은 이상한 꿈에서부터였다. 꿈속에서 나는 둘째 아이를 잃어버렸고 아이는 울면서 나를 찾고 있었다. 남편과 큰 아이는 교회에 가야 한다고, 시간에 늦었다고 하면서 나를 채근했다.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으로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고 있었고 둘째 아이는 계속 어디선가 우는 꿈이었다.
꿈에서 깬 뒤,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 힘든 일이 있는데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너무 자책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떠오른 기억 하나, 꿈속의 그 아이는 어린 나였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은 말하기 시작했다. 세 살 어린아이가 여기저기 헤매면서, 경찰서 안에서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고… 엄마 몰래 언니를 따라간 죄책감, 그리고 마침내 길을 잃어버린 수치심으로 인해 묻어둔 그 마음이라고. 너무 간절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있던 그 마음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마음이 일렁일 때마다 나는 평생 그 아이를 몰아세웠다. 길을 잃고 경찰서에 가게 된 건 너의 그 고집스러움, 엄마 말 안 들어서 얻게 된 당연한 수치라고 생각하며 한 번도 그 아이를 만나보려 하지 않았다.
‘그건 네 잘못이야, 너는 그렇게 고통받았어야 했어.’
라는 마음으로 묻어둔 내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엄마를 애타게 그리워하던 그리움.
내면 아이를 알게 된 나는 조금 컸다. 그 아이를 안아준다. 더 살포시 안아준다.
‘무섭지? 엄마가 왜 빨리 안 오는지 원망스러웠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지?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울지 마, 아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를 안아주고 품어주고 나서야 보인다.
그 귀여운 아이를 잃어버려서 애타게 동네를 찾던 엄마가. 아이가 속상해할까 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에둘러 동네 사람들이 너 정말 신기하다고 신동이라고 자랑스러웠다고 표현하던 엄마가. 아장거리며 길을 건너는 아기를 불쌍히 여겨서 경찰서에 데려다준 한 착한 어른의 마음이.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고 싶어서 새우깡을 건네주던 경찰 아저씨의 친절한 마음이.
35년도 더 지나서야 알게 되는 내 마음과 그들의 마음. 새우깡을 까서 먹으며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어째 새우깡이 더 짜진 거 같아.”
내 눈물의 소금 함량만큼 더 짜진 새우깡을, 이제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 슬픔과 사랑이 버무려진 새우깡은 더 특별한 맛이 된다.
+ 내면 아이를 만나는 일은 웅크렸던 나를 만나는 시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만나서 안아주는 시간. 그런데 조금씩 더 알게 되었어요. 내면 아이를 만나는 것은 그 이상이란 것을요. 그 아이 덕분에 내가 잊고 있던, 잊고 있던,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마음들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란 것을 최근에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잊고 있던 것들을 만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자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을 글로 남깁니다. 이 글을 누군가가 읽으면서 잊고 있던 당신의 그 아이와 그 마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