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반딧불이 빛나는 밤

by 트와일라잇

저녁을 먹고도 입이 궁금하다는 첫째의 외침 덕분이었다.


“엄마, 과자 먹고 싶어! 과자 사주면 안 돼?”


숙제하기 싫어서 뒹굴거리며 짜증만 내던 둘째와 함께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기로 했다. 밤이 되어 왠지 무섭다면서도 엄마랑 길 걷는 걸 좋아해 주는 둘째와의 외출은 은근히 즐겁다. 꽤 서늘해진 가을 느낌의 골목길. 모녀가 손잡고 즐겁게 걸어가니 이 또한 소풍 같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감자 과자 하나, 나쵸 하나를 샀다. 살짝 망설이다가 오늘 밤 줌 모임을 위해 커피도 한 잔 샀다.


그렇게 까만 봉지 하나, 커피 한 잔 들고 길을 나섰다. 편의점 문을 나오자마자 빛나는 형광 연두색 작은 물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딧불이었다.

“와! 저건 반딧불이잖아! 정연아, 반딧불이야! 보이니?”


놀랍고 반가워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놓치기라도 할 듯 애틋한 마음으로 딸을 불렀다.


“응, 저거 반딧불 맞네!”

생각보다 덤덤한 딸의 반응을 보면서 의아했다.


“정연이, 반딧불 처음 보지 않나?”

“거인의 집에서 봤어.”

“거인의 집? 거인의 정원 말하는 거야?”

“응, 엄마가 안에서 커피 마시고 있을 때, 우리가 밖에서 반딧불 엄청 많이 봤어. 신나서 소리치는데, 엄마가 집에 가자고 했잖아.”


아, 이런 일이 있었구나!


몇 년 전, 지금처럼 약간은 시원해지던 어느 초가을 날 저녁. 동네에 있는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친구네와 커피를 마셨다. 아직은 어렸던 귀여운 꼬마들은 정원을 마음껏 뛰놀며 놀고 있었고 나와 친구는 창을 통해 아이들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날, 아이들은 정말 아름다운 반딧불이를 만났던 것이다.

상처가 주관적인 것인 만큼, 추억이란 것도 참 주관적인 것 같다. 이번 여름, 반딧불이 잘 보인다는 어느 숲 체험 예약을 했는데 전날 밤의 폭우로 취소되었다. 아이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했다. 아쉬웠던 내 마음과 달리, 이미 자신만의 반딧불이를 만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만의 추억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고 있다고 내가 믿는 우리 둘의 삶은 하나가 아닌 둘이다. 아이의 삶에는 내가 모르는 빛나는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내가 모르는 슬픔이 있을까 봐 어쩌지 못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불쑥 성장해 있는 아이.

아이는 그렇게 홀로 상처도 받지만 뜻밖의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가 경험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삶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다.


뜻밖의 반딧불이 날아와 나에게 가르쳐 준 오늘의 교훈은 각자의 삶 속에 어딘가 빛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부모로서 자녀의 삶의 모든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그 모든 가능성을 지닌 자신의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다.

무엇보다 부모인 내가 작은 것 하나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음미하며 소중히 삶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그 작은 반딧불과 만남, 딸과의 대화가 준 교훈, 삶이 준 반딧불처럼 빛나는 시간을 음미하기 위해.

오늘 나는 자신의 빛나는 추억을 지닌 '딸'이라는 영롱한 반딧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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