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와일라잇 Nov 06. 2022

엄마는 예뻤다.

치유의 숲을 엄마와 걷다.



모처럼 엄마랑 나선 가을 외출 길이었다. 단풍이 한창인 한라산 둘레길을 가보려고 하다가 문득 엄마가 치유의  얘길 하길래 겨울딸기의 근황도 궁금해서 예약 센터에 전화를 했다.

 마침 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즉시 예약을 하고 이것저것을 챙겨 먹고 시간을 맞추어서 나갔다.

엄마랑 나랑 우리 딸 둘. 엄마가 사업을 정리하고 한가해지신 올해는 엄마랑 우리 모녀, 넷의 외출이 참 많았다.

 어느새 커서 자기 걸음도 잘 걷는 두 딸이 고맙고 그 딸들과 조카를 돌보느라, 조금은 나이 들어 보이시는 엄마를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늘 활기 넘치는 엄마였는데 무언가 인생에 대해서 관조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은 어색하다.


치유의 숲은 생각보다 따스한 날씨 덕분에 참 걷기 좋았다. 데크로 놓아진 길을 따라 걸으며 산에 숨겨진 버섯 찾기에 몰입했다. 내가 소개해준 네이버 스마트 렌즈가 신기해서 여기저기 나무와 버섯의 사진을 찍으며 이름을 확인했다. 소녀처럼 식물들 사진을 찍으며 이름을 확인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어릴 적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쳐 주며 웃으시던 그 모습이 그대로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최초의 선생님인 우리 엄마. 여전하구나.


한참을 길을 걷는데 엄마가 말을 한다.


“ 얘들아, 하늘 좀 봐봐. 너무 이쁘지? 요즘 구름이 너무 예쁜 거 같다.”


나도 요즘 하늘 보면서 구름이 너무 이쁘다고 반해 있었는데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마음이었다.

가을 하늘 구름을 보며 웃으며 다시 걸음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말을 한다.


“이렇게 구름을 보며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마음에 여유가 좀 있나 봐. 엄마는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니깐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보니 정말 엄마의 미소가 평화로워 보인다.


막내아들이 40세가 된 엄마는 이제 우리를 가르치기보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묻고 배우곤 한다. 인터넷 뱅킹에서부터 인증, 카카오, 컴퓨터까지. 새로운 것들을 마다하지 않고 배워가는 엄마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잔소리(가르침)는 참 많이 줄었다. 그저 애잔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익숙지 않은 나는 여전히 예전의 엄마가 그립기도 하다. 큰 소리로 우리를 호령하던 엄마,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쳐 주며 미소 짓던 엄마, 혼낼 때는 하나하나 이유와 우리의 잘못된 행동들을  꼼꼼히 따지며 혼내던 엄마의 모습이 싫고 귀찮다고 느꼈던 적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 시절의 엄마는 나를 가르칠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잔소리 안에는 분명 사랑도 함께 했음을 이제는 알아가는 육아 12년 차의 엄마가 된 나. 그 긴 세월 엄마의 잔소리 속에,  엄마 나름의 엄마로서의 애씀과 사랑이 묻어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그저 다 내려놓아 마음이 편하다는 엄마의 말씀이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인다.


“나의 사랑하는 왈순 여사, 명랑했던 모습 그대로, 잔소리도 활기찬 가르침도  엄마의 애씀인걸 그때는 몰랐어요. 지금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도 예쁘고 우리를 가르치던 그 모습 그대로도 참 예뻤단 걸, 우리 엄마는 그저 예쁘다는 걸 42살의 어느 가을날 뒤늦게 깨달았어요. 고마운 엄마, 앞으로도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아름답게 살아가요, 우리.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 아직은 들어야 할 나이인 것 같아요. 딸이 마땅치 않아 보이는 어느 날이면 언제든 잔소리하길, 가르쳐 주길 기다릴게요.”

작가의 이전글 삶은 이야기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