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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Nov 22. 2022

여름 맛

아름다운 그림책과 순간을 기억하며


벌써 11월을 마무리해가는 시점이다. 날은 더 빨리 어두워지고 해는 더 늦게 뜨고 있다. 차가운 음료수는 점점 더 멀어지고 따뜻한 음료수가 좋아지는 계절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을 생각해 본다.  양띠에 태어나서인지 순한 양들처럼 착하기만 했던 우리 반 아이들과의 만남. 끔찍하리만큼 고역이었던 코로나 거리두기의 해제. 잊지 못할 순간들을 생각해 봤다.


오늘 학년 협의 시간에 1년 동안 반 아이들과 읽었던 그림책을 생각하면서 자료를 갈무리해보았다.


가장 좋았던 책은 맛있는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1학년 입학한 지 100일이 되던 날, 아이들과 ‘여름 맛’이라는 그림책을 같이 읽었다.


“쏴- 아 - 아 소나기 맛”

“맴- 맴 - 맴 초록 맛”


…….


가장 마지막의 백미의 구절은


“나의 여름은

너와 함께 하는 나의 여름은 …

사르르 녹는 맛”


이란 구절이었다.


어디서 어떤 모습이건 ‘너와 내’가 만나 보낸 시절의 여름 맛은 얼마나 뭉클하고 사르르 녹는 아름다운 맛인지.



이 책을 읽고 100일 축하를 겸해서 아이들에게 알록달록한 젤리를 나누어주었다. 색소도 있고 설탕도 많은 젤리였다. 아주 새콤달콤한 향이 가득한.

그렇지만 나누고 싶었고 기억하고 싶었다. 맛으로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우리 지금 이 순간만 조용히, 마스크 벗고 100일 동안 못 본 친구 얼굴 마음껏 보면서 젤리 먹자.”


꿈뻑꿈뻑 눈치를 보다가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보면서 젤리를 먹었다. 알록달록한 젤리와 함께 처음으로 조용히 바라보게 된 서로의 얼굴, 그리고 남기고 싶었던 기억.


1년 동안 읽은 그림책을 갈무리하며 최고의 순간으로 이 순간이 기억나는 건 역시 나 또한 천천히 그들의 온전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 존재로서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여름 맛이 갑자기 생각나며 뭉클해진 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11월. 이제 조금 더 여유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존재로서 너와 내가 만나는 순간. 그 순간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내 마음속 나의 속삭임.


어떤 11월의 맛을 남길 수 있으려나… 행복한 고민을 시작하며 내가 맞이한 가을밤은 고소하고 알찬 밤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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