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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Nov 27. 2022

김장의 나날

친정에서 엄마의 김장을 엿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수고로움을 알아간다는 뜻인 것 같다.


매번 엄마가 해주는 집밥의 수고를 모른 채 살다가, 독립과 결혼을 통해서 하루 한 끼를 꾸려내는 것이 무한한 사랑과 성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시집가서도 늘 얻어먹던 김치. 그 김치에 담긴 정성을 배우기까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작년부터 엄마가 김장하는 날이면 친정으로 와서 김장을 아주 살짝 돕고 있다. 그러면서 더욱 배운 김장 속에 서린 엄마의 수고를 본다.


김장을 하기 한 달 전부터 엄마는 몇 포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서울 사는 아들네와 대구 사는 큰 딸을 위해서도 부쳐야 할 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과 비교하며 가성비 좋은 배추를 찾기 위해 마트 여기저기의 전단지와 매일시장 배추 절이는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고민 끝에 지난 주말, 엄마는 특가 배추를 판다는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서 8 묶음의 배추를 사서 옮겼다. 아빠와 옥신각신하며 무거운 배추를 옮겼을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배추 구입과는 별개로 틈틈이 천일염 10킬로와 때깔 좋은 고춧가루를 구입하였다. 그러는 사이 아빠는 언니와 동생에게 보낼 김치를 위해서 김장 봉투와 스티로폼 상자를 구입했다.


금요일 저녁,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배추를 손질하셨다. 생각보다 달달한 배추의 맛에 흐뭇한 엄마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며 시시각각 배추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토요일. 북어를 넣어 육수를 끓이고 사과와 배, 양파를 갈고 찹쌀물을 만들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아빠는 올해도 무를 썰어 무채를 만들어주셨다. 양념을 준비할 때쯤 거실은 카펫과 신문지, 김치를 담을 보관함으로 가득해졌다.


그렇게 오랜 수고와 준비를 통해, 32포기의 김치를 담근 엄마. 엄마의 츄리닝은 김치처럼 양념이 되었다.


비싼 배추라며 아주 작은 이파리도 아깝다며 모아서 남은 양념에 버무려 겉절이도 만들었다.


그 사이, 나는 인터넷 서핑이 준 ‘보쌈 레시피’를 보며 돼지고기를 삶았다. 그리고 살짝 집 앞 마트에 들러서 굴도 사 왔다.


택배 보낼 김치 포장까지 마친 후, 엄마와 나, 아빠 우리 셋은 앉아서 김치 겉절이와 굴, 돼지고기 수육을 먹었다.


“집 안에 김치 냄새가 가득해!”


대수롭지 않지만, 어린 시절 나를 꼭 닮은 예민한 둘째가 집안 가득 벤 김치 냄새에 한 마디를 한다.


그 시절, 내가 꼭 그녀와 같았다.


김치 부침개,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그 일 년 반찬을 만드는 날의 나는 김치 냄새가 가득 벤 집의 그 느낌만이 보였다.


나이가 들어, 주부가 된 나는 그 김치에 담긴 수고가 보이고 그 김치로 견뎌낼 수개월의 든든함이 보인다. 나이 듦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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