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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Dec 29. 2022

아빠의 금연 성공

아빠의 금연 성공


 지난주 토요일은 아빠의 72번째 생일이었다. 2년 전, 하던 사업을 정리하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하시던 관리직 일도 그만 두신 아빠. 아빠에겐 진정한 퇴직이 있던 한 해이자 자신의 마음속 고향인 울릉도로 형제끼리 여행도 다녀왔던 의미 깊던 한 해였다.

 나는 내 나름의 짐작을 가지고 생신상 앞에서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올 한 해 가장 의미 깊었던 일이 뭐였어요?”


“금연에 성공한 것?”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맞다, 아빠가 흡연 생활 어언 50여 년 만에 금연에 성공하셨다.


엄마의 길고 긴 구박 속에서도 베란다 뒤 편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빠. 아빠의 차에 타면 나던 담배 냄새와 집 안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던 담배 냄새가 사라졌다.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다. 아빠는 그렇게 뜻밖에 금연에 성공하셨다!


 10살에 아버지를 잃고 외로이 야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성장기를 보낸 아빠. 공무원으로 수십 년 생활을 하다가 제주에 내려와서 사업가로 또 수십 년을 보낸 아빠가 진정한 은퇴의 해인 2022년에 금연에 성공하셨다.


찬찬히 살펴보니, 아빠의 혈색도 좋아 보였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술도 거의 드시지 않는 듯하다.


늘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과 식사 자리에 가면 한 잔씩 걸치던 술이, 조용한 은퇴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일까?


대신 아빠는 새벽 5시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신다. 공원으로 걷기 운동을 가시는 것이다. 1시간 또는 2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고 돌아오신다. 그리고 저녁이면 좋아하는 책을 펴고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으신다.

좋아하는 것을 누리는 생활 속에서 조금 좋아하던 친구들은 저절로 거리가 멀어지는 것일까?


아빠의 금연을 누구보다 기뻐하는 건 엄마, 해맑게 기뻐하는 엄마의 눈이 아이처럼 밝아 보인다.


돈을 버는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아서일까?


아빠가 수십 년간 몇 번이나 시도하던 금연에 마침내 성공한 그 모습이 기쁘면서도 지난날의 삶이 많이 힘들었던 걸까?라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게 뜻밖의 은퇴와 성공을 이룬 아빠의 2022년.  


문득, 나도 무언가를 더 내려놓고 나면 야밤 커피를 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 상태에서 열심히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 워킹맘인 나는 힘이 들 때면 나를 위해 야밤의 연료인 커피를 주입한다. 그렇게 나라는 기계를 꾸역꾸역 돌리는 그 느낌.


마침내, 야밤 커피를 끊게 되는 어느 날이 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자랑스럽고 해방된 기분이자 묘한 기분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아빠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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