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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Jan 08. 2023

부부의 세계

엄마 없는 친정에서 아빠를 만나다.


 친정 엄마는 3년째 서울 손주를 돌보러 종종 서울 출장을 가신다. 엄마의 서울 상경으로 홀로 집에서 세월을 보내고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서귀포에 갔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귀포 친정 집을 보니 색다른 느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아빠는 속옷, 운동화, 잠바 모든 것을 혼자 구매하시는 분이고 어찌 보면 엄마보다 훨씬 더 감각이 젊은 분이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미처 해보지 못한 살림이 익숙지 않아 엉망일 수 있다는 나의 예상은 늘 보기 좋게 무너진다.


 집에 와서 둘째 딸이 먹고 싶다던 뿌링클 순살을 시켜서 사이좋게 밥을 먹고 아빠가 좋아하는 미스터 트롯 2를 웃으면서 함께 봤다.


취향이 교차하는 남편과 나처럼, 아빠랑 엄마도 꽤나 취향이 교차한다. 홀로 꿋꿋이 박완서 책을 완독 하시던 엄마와 달리, 미스터 트롯을 본방, 재방사수하며 보시던 아빠. 아빠랑 티비 보는 시간, 함께 웃으며 보낸 시간이 좋았다.


‘부부끼리 취향이 일치하면 좋을 텐데…’


액션과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남편과 휴먼 코미디와 미국 시트콤을 좋아하는 평행선 같은 취향을 가진 우리 부부.  ‘함께 취미 즐기기’라는 나의 갈망은 현실이 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을 엿보며 그것이 각자의 세계를 오래도록 지키는 길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 6시, 매일 같이 울리는 5시 알람을 잊고 일어난 시각. 아빠가 부스럭거리며 외출하시려고 현관문을 닫는 소리 덕분에 깨났다. 새벽 운동을 가시나 보다. 1시간이면 돌아오시려나 싶어서 아침밥을 준비할 타이밍을 엿본다. 아빠를 기다리며 책도 보고 핸드폰도 보며 뒤적거렸다.


아직도 오지 않는 아빠. 나는 함께 아침 먹기는 포기하고 밥을 취사하고 아빠가 드시도록 배추된장국을 끓였다. 그리고 샤워하고 옷까지 갈아입을 즈음, 외출 후 2시간 가까이 다 돼서 돌아온 아빠.

 

“아빠, 보통 아침에 어느 정도 산책하시는 거예요?”


“한 6km 정도 산책하는 거 같은데?”


꽤나 긴 시간을 산책하시는 아빠의 여유가 살짝 부럽기도 하다.


 엄마는 자기가 없으면 아빠가 어찌 지낼지 걱정하지만 사실 아빠는 잘 있다. 집은 은근히 더 깔끔한 느낌이었고(밥을 잘 안 해서 드시니깐?)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이런 사실을 알면 엄마는 서운할까?


 늘 자기 말이 맞다고 여김 받기 좋아하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엄마. 집으로 돌아오면 청소하고 빨래하며 아빠의 식사까지 챙기는 엄마의 노동을 보며 자라온 나. 나는 그때마다 아빠가 너무도 무심해 보였다. 그저 받기만 하는 아빠의 행동이 철이 없어 보였다고 할까?


그런데 오늘은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은 아빠가 엄마의 그런 부지런함과 내가 해야 잘 되지 하는 자부심에 대해서 그냥 받아주신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자부심을 가지고 무엇이든 엄마의 방식대로 하도록 말이다.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일을 택한 것 같다. 이렇게 혼자서도 사실 너무 잘 지내는 아빠를 보니, 그런 심증이 나도 모르게 확신이 된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엄마의 살림에 대해서 일언반구 불평이나 첨언을 하지 않는다. 이는 불평이 나오도록 행동하지 않는, 부지런한 엄마의 행적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 자체를 다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아빠의 자연스러움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 삼 남매에게도 늘 방관에 가까우리만큼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한 마디만 던지시는 아빠. 잔소리 한번 안 하는 아빠의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가 우리 가정을 부지런히 일구는 엄마의 노력만큼이나 가정을 안정되게 이끌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매번 집에 올 때면 주머니와 지갑을 뒤져서 꼭 돈을 찾아내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던 엄마.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이 느껴지던 엄마의 배웅 대신, 웃으며 인사하면서도 ‘할아버지가 용돈 줄 돈이 없네,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라고 하고 넉살 좋게 말씀하시는 아빠의 마지막 인사가 인색해 보이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아빠가 주는 자연스러움 덕분이었다.


40이 넘어 아빠 홀로 지키는 친정집에서 아빠를 만났다. 늘 주연을 담당하는 엄마대신 조용한 조연으로 살아온 아빠를 만난 시간. 열심과 자연스러움, 엄마와 아빠가 이룬 부부의 세계를 엿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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