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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Jan 10. 2023

다시 만난 파랑새

아침 산책이 준 기쁨


오늘은 오랜만에 기운 내서 아침 산책을 한다. 이상하게 연말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컨디션이 영 회복되지 않았다. 방학이 되면 좋아하던 아침 산책만은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서 할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그 다짐이 무색하리만큼 시름시름 앓으며 조금씩 멀어졌던 아침 산책.


 다시 용기 있게 나와서 걷는 오늘 아침. 환해지는 아침인데도 여전히 은은히 빛나는 새벽달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촉촉해졌다.

걷다 보니, 귀여운 동네 냥이가 반갑게 얼굴을 보인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냥이.


‘어서 사진 찍어봐!’


라고 말하듯이 꼿꼿하고 우아한 자세로 서 있는 고양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고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걷다 보면, 쌀쌀한 겨울 날씨가 상쾌해지는 지점이  오는데 나는 그때의 기분이 참 좋다. 열심히 걸으며 떠오르는 해, 어느덧 얼어 있던 땅이 풀리는 느낌, 그리고 여전히 노랗게 달려 있는 귤나무의 귤들이 참 그림같이 아름다운 우리 동네.


 아팠던 덕분에 잠시 잊었던 동네 산책길의 귀여운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내게 말을 건다. 잊었던 시간조차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다시 봄의 기쁨.


산책 코스를 돌아서 집을 돌아오는 길. 아직도 푸릇푸릇한 녹나무 사이에서 초록빛을 띤 작은 동박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 미소 짓는다.


 30년도 지난 어린 시절, 제주에 놀러 온 사촌 동생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사촌오빠는 새 덫을 놓아 동박새를 잡았다. 그 새를 귤밭 사이에 자리 잡은 무덤가 돌무더기 앞에서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서 털도 뽑고 직접 손질해서 구워주었다.


 본투비 서울태생이었던 나는 새를 잡아서 먹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경악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오빠가 정성스레 털 뽑고 구워준 작은 동박새는 미니 훈제 치킨 같았다. 그걸 먹으면서 내가 함께 먹었던 것은 따스한 작은 사랑 한 조각.  오빠의 따뜻했던 친절과 소중한 기억이 내 가슴속으로 살포시 날아들었다. 그렇게 사랑받으면서 나는 제주를 자연스럽게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산책을 하며 나를 둘러싼 수많은 친절한 손길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나는 다시 넓어지고 감사함이 가득해진다.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을 느끼고 싶어서 자꾸자꾸 떠나보는 여행처럼. 나는 어느새  행복을 찾아서 일상의 소중함을 잠시 벗어나 모험을 떠났던 치르치르처럼 산책을 통해 내 일상, 내 곁에 있던 파랑새를 다시 발견한 기분이다.

 

 떠나보면 더 잘 알 수 있는 소중한 일상, 산책의 기쁨을 만끽하며 이제는 후회보다는 그 후회의 시간조차 새로운 각성을 위한 선물로 여기며 감사함으로 맞아보고 싶은 아침이다.


아팠기에 회복이 있고, 없었기에 있음이 존재한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다는 그 말처럼. 일희일비를 기록할 수 있는 오늘의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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