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유엔브이로 있으면서 사교춤을 못추어서 외로웠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오늘 아침에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딸이 일어나길 기다리다 거실의 전기장판에 누었습니다.
거실에 한쪽에 테이블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쓰던 방의 한가운데 두고 거실에는 넓은 전기장판을 깔고 지내지 한참이 되었습니다.
딸에게 물 한잔을 주고 딸은 화장대에 앉아 얼굴을 다듬으며 제이팝을 듣습니다. 저는 핸드폰으로 피아노곡등을 듣다가 touch by touch 라는 흥겨운 댄스곡에 흥얼거리는데 한 흑인이 춤을 추기시작하자 플로워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백인들도 흥겨워 하더니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하더라구요.
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1996년인가 1997년 초일것입니다.
부탄UNV로 나갔을때 제 듀티스테이션인 즉 소속기관인 유시팡 RNRC에서(농장에 가까움) 퇴근하고 도시인 팀퓨로 갔다가 PLUM인가에서 만두을 사는 영국봉사자 VSO을 만났는데 자신이 임기을 끝나서 본국으로 돌아간다며 오늘 마지막 파티인 페워웰파티을 연다고 가자고 해서 따라 갔습니다.
가니 아직 청소도 안되어서 청소도 도와주는데 방 하나에 가면서 댄스홀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파티하면 그냥 앉아서 이야기만 하는줄 알았죠. 방글라데시에서도 일본봉사자을 집으로 초대할때 음식만 먹고 이야기만 하다 헤어지거나 아니면 집에서 음식을 요리해 식사을 하고 집에서 가까운 소나르강 호텔에 가서 커피 한잔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영국봉사자는 집에서 방 한칸은 댄스방으로 다른 한칸은 파티룸으로 한다고 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2년생활을 하면서 춤을 춘기억이 없고 한국에 돌와와서 봉사단귀국모임에 홍보국장을 하면서도 춤이나 나이트 클럽에 가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국내 파견시에 아주 몇시간을 사교춤을 배웠는데 잘 못춥니다. 사회에 나와서 정식으로 사교춤을 배우지 못하면 사교계에 얼굴을 내밀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소녀들이 사교계의 데뷔을 위해 사교춤을 배우고 피아노을 배우는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때 학교에서 가을 운동회을 앞두고 포크댄스을 배웠지만 그 것도 옛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무용시간에 에어로빅등을 배우지만 사교춤은 안가르쳐 줍니다.
영국봉사자인 vso 의 페워웰파티에 참석을 했더라면 젊은 vso나 일본봉사자jocv. 네덜란드 snv등과 스스럼 없이 어울렸을 것입니다.
저는 unv등 나이드신 분들과 어울리느라 젊은 분들과 교제을 많이 못했네요. 제가 그떄 영국봉사자의 파티에서 같이 그들과 춤도 추고 자기 소개도 했더라면 서로 오해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춤을 추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교춤도 추지 못했었고 농장에서 수도 팀퓨로 가다보니 복장도 안좋아 파티에 참석을 안한것입니다.
그후에 영국봉사자을 만났는데 저보고 담배을 피면서 얘기하기을 자신들이 진정한 자원봉사자라며 우쭐해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vso는 공무원으로 직급이 7급이고 unv는 공무원으로 직급이 6급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대우을 해주는 것이었고 다른 나라 봉사자들은 오해을 한것 같습니다. 내가 도도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후에 vso에서는 부탄에서 3년차 생활을 하던 데이비드가 제 상대나 vso프로그램 오피서인 메리영과 가끔씩 인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undp에서 근무하던 스위스 친구에게 이야기을 들으니 스위스나 유럽에서는 바나 클럽에 갈때 여자와 남자가 동시에 입장이라고 하더라구요. 혼자서는 입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잘 다녔는데 나중에 현지인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소리에 약간 어색해지고 그 친구는 부탄인 화가와 어울리다 헤어졌지요. 그 화가가 제 친구가 출장을 일주일인가 다녀온 사이에 미국인 세이브더 칠드런 부탄 대표와 연인이 되서 제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친구가 1997년 부탄의 도시 중심에 있는 이탈리안 하우스에서 파티을 열면서 저을 초대해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어요. 그곳에서 스위스의 기라는 사람이 춤을 추자고 하더라구요. 처음에 거절을 하니 자신만 따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도 모르겟씁니다. 발을 여러번 밟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사교춤부터 배워야 겠다고 했씁니다. 어느 누구도 저에게 사교춤을 배워서 나가라고 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저는 부탄에서 대표을 도와서 시골에서 근무하던 unv들이 팀퓨을 방문하면 그들이 묵는 호텔에 전화해 간단한 저녁파티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이 저녁 파티는 순전히 제돈 들여서 한것은 아닙니다. 어찌 된 것인지 undp의 unv오피스에서 완추데마는 팀퓨에 unv가 오면 저에게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저는 제일 막내이고 어른을 공경해야한다는 생각에 내가 아는 한국음식을 간단히 준비해서 조촐한 음식을 준비 한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유엔브이 모임을 제가 장소을 컨텍하고 유엔브이 체크북을 제가 관리하고 영수증 철도 해서 유엔브이 오피스에 제출했습니다.
팀퓨시내의 드,룩호텔에서만 유엔브이 모임이 열리어서 다른 호텔도 가보고 다른 장소도 섭외하고 음식메뉴도 정했습니다.
이 월례모임은 유앤브이 엠엘이에서 1% 적립되는 회비로 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음료까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술을 안마셔서 칵테일이나 와인이나 보드카 맛도 모르고 하도 긴장을 해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부탄의 팀퓨 면세점에서 술을 사기는 했지요.
그리고 몽골의 졸마도르지 고초는 이야기했습니다. 그전에 호주 UNV프로그램 오피셔는 남편이 모임을 흥이 나게 이끌었다고 합니다. 자신들과 춤도 추고 그랬다고요.
저는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고 이야기만 하는 모임으로 이끌었는데 호주 사람은 파티 분위기가 좋았다 여러명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탄에서 컨텍이 끝나면 남미로 나갈까에서 부탄 유니세프에 근무하는 칠레사람와이프에게 스페니쉬을 배우는데 가는 길이 안좋았습니다. 우리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좁은 길목에 커다란 개가 큰소리로 짖고 가을이 깊어가니 날도 어두워져 무섭더라구요. 제가 부탄에서 차가 있었다면 무슨 문제가 됏을까요.
나중에 한국에서 라이스 전문가가 오고 부탄에 어느 체육관 홀에서 볼파티가 열리는데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은 완전히 드레스 업을 하고 커플이 그 볼댄스파티에 잠석을 한 것입니다. 악세사리 장식도 하고...
호텔에서 열리는 부탄 유엔의 파티는 그냥 부페올 식사하고 스탠딩 파티이며 저는 부탄을 방문하는 대표분들이 동반한 부인들의 이야기 상대가 되곤 했습니다. 아마 유니세트부탄대표의 부인과 정원프로그램을 같이 하면서 그분이 칭찬을 하지 않았나봅니다. 그분은 영국분입니다.
월드프랜즈에 이야기을 하고 제안을 하고 싶어도 KOICA 홈페이지 로그인이 쉽지가 않아요. 예전에는 여러번 글을 올렸는데 지금은 벽이 너무 높습니다.
월드프랜즈 여러분 파견국에 나가서 부디 일본인JOCV와 사이 좋게 지내시고 영국봉사자VSO나 네덜란드SNV. 미국의 peace crop애들, 캐나다의 cuso. 뉴질랜드의 VSA 등과도 어울리세요. 아일랜드 concern등과도요.
함께 춤도 추고 얘기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 집도 방문해 그나라 음식도 먹고 서로 배우시고 나중에 사업도 하고 지구에 위기가 닥칠시에는 함께 도우면서 평화로운 지구촌건설을 위해 힘을 씁시다.
영국봉사자로 VSO에 다녀온신 분은 이글을 부탄에 1996년에서 1998년까지 있었던 분들에게 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