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봉양이 자라나는 세대을 위축해서야...청소년을 위한 안전망 필요
대전 상급병원에 새벽6시에 환자입원실에 면회가 허용되야 한다. 과거에는 대전한방병원에 새벽에 입원환자 보호자들이 새벽에 병원출입이 자유로워 가족간에 환자을 교대로 돌볼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선병원은 새벽6시부터 환자의 면회가 허용이 안되고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공동입원실의 경우 커튼이 안쳐지면 입원환자의 경우 보호자가 없을 시에 서로 도와주기도 한다.
심한 환자가 아니라면 24시간 보호자가 필요없으며 가족의 경우에 시간이 있거나 혼자사는 사람들이 교대로 환자을 케어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가족이 있어서 저녁때까지 환자옆을 지키다보면 아이들은 누가 케어을 하나?입원실에 커튼을 치워서 서로가 서로을 돌보게 하고 병원에 캡을 쓴 정식 간호사들이 환자가 아프면 그때가서 환자을 돌보면 될 것이 아닌가? 아버지을 보니 식사을 할때 잠깐 침대식탁을 빼주고 밥먹는 것 돌보고 내가 여자라 대소변 관리을 좀 어려웠다. 휄체어에 태워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고 잠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는 눈을 감고 누워계셨었다. 집에서는 세수도 시키고 이빨도 양치도 했지만 병원에서는 제대로 못했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가 대전한방병원에 입원하섰을때 초등 2학년딸아이을 잠에서깨워 첫차 시내버스을 타고 둔산동의 한방병원을 갔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환자보호식이 없었던 것같다. 아버지가 아침식사로 흰죽을 몇숟가락 드시면 그 남은 흰죽으로 딸과 내가 요기을 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오전에는 나와 딸이 있었고 오후두세시에 어머니와 교대을 했다. 나는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고 딸은 학교숙제등을 하고 ...집은 조용했다. 아버지는 평상시에 거실에서 밤 11시까지 텔레비젼을 보셨다.
아버지는 대전 한방병원에서 담당의사가 휴가을 가서 진료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을지대학병원으로 깄디가 수술을 못받고 임종실로 옮긴지 두시간여만에 세상을 떠나셧다. 어머니와 나와 딸이 같이 했다.여동생은 아버지가 임종실로 이동을 햇는데 남자조카 샌들을 사준다며 가까이 이마트을 갔다.
아버지가 이상해서 문자을 보냈는데도 답변이 없었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큰남동생의 아들과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병원에 뒤늦게 왔다.
우리는 돈이 없었다. 집안일을 한다고 아버지 어머니을 돌본다고 동생들은 나에게 돈을 준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근근이 알바을 해서 식생활비에만 보태는사정이라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생각끝에 결정했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내가 병원차트 같은 것을 동네 피시방에서 만들어서 집에서 혈압을 체크하고 소변을 몇번 누는지등을 기록했다. 아버지가 혈압으로 쓸어지고 곧 괜잖을 것을 어머니와 나는 생각을 했고 아버지는 오른팔인가 왼팔을 움직이지 못해서 부축을 해야 했다.
풍으로 재활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졌다. 동네 한의원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아버지가 쓰려지셔서 그러니 병원에는 가기 싫다고 하셔서 한의사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해서 진료을 봐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방문 진료을 부탁하면서 방문진료비도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던 방은 좀 쾌쾌한 냄새가 났지만 한의사선생이 오후 여섯시 무렵에 방문해서 내가 만든 아버지 건강체크 차트를 보면서 진료을 하셨다.
어머니와 상의을 해서 아버지 팔의 물리치료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머니와 상의했고 막내 남동생에게 이야기 하고 남동생이 직장에서 일하다가 몇번 집에 오더니 오케이을 해서 아버지을 대전한방병원으로 모셨다.
서울에서 여동생은 아버지 병구완에 필요할 것이라며 이것저것을 보냈는데 별로 도움을 되지 않았다.
요사이 내가 일자리을 구하면서 어머니에게 매일 가다시피햇다. 일을 하면 어머니을 찾아뵙지 못한다. 그런데 동생은 나에게 감기가 들었으니 엄마에게 전염된다고 빨리 가라고 하고 어머니가 뭘 잘못하거나 느리게 움직이면 큰소리을 엄마을 나무랬다.
어머니는 나에게 항상 큰소리을 치며 야단을 하고 하더니 여동생이나 남동생들에게 어머니는 말 한자루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어머니가 왜 국을 안먹는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어머니는 입이 마르다면서 물등을 드셨고 나랑 같이 살때는 저녁에 항상 국을 끓여야 한다고 했고 어머니 혼자 살게 되자 나는 간혹 국을 끓여서 가느라 냄비와 뚝배기가 필요했었다..
그리고 몸이 안좋은데 김치을 이야기 해서 요양보호사보고 담아달라고 하라고 김치꺼리을 사다 주었다. 몸상태가 좋으면 김치가 잘 담아지지만 몸이 안좋을때 김치을 담으련 김치 맛이 안난다.
어머니가 이야기 하길 우리동네 이발소집 아줌마가 요양 보호사을 다니는데 그집에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김치도 담아서 준다고 했다.
여동생은 어머니와 산지 2-3년밖에 안된다, 입맛이 변할 수도 입지만 국을 안끓이는 것은 이해가 안간다. 날씨가 서늘해 지면 따스한 국물로 원기을 돋우는 것이 아닌가? 반찬도 매일 안한다, 가서보면 일주일에 한 번하는 것인지 냉장고에 담아두고 차디찬 반찬을 준다.
나는 매일 반찬을 했다. 반찬가지수는 많지가 않다.그대신 반찬은 따스하다.국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겟지만 따스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내딸은 반찬을 한번 두번 내놓으면 먹지 않는다. 그래서 반찬을 조금씩하고 매일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가 요리책을 사서 색다른 요리방법으로 요리을 하기도 했다. 요리책에 나오는 재료을 다 사지는 못한다. 돈이 풍족하지 않으니..시중에는 이삼천원으로 반찬 만들기라는 책자도 나온다.
그러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돌아가시고 이제는 어머니가 건강이 안좋다. 겨울에 내복을 종종 사다드렸다. 작년에는 어머니 내복을 가을에 사다 드렸더니 여동새이 어머니가 땀을 많이 흘린다고 내가 산 내복을 가지고 동네 시장에 가서 메리야스로 바꾸었단다.누가 좋아하겟는가?
어머니가 몇년전부터 피부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노인이 되서 노인성피부가려움증이라고 생각하고 물을 마시거나 잣을 먹으라하고 샤워도 하고 로션을 바르라고 했다. 그리고 여동생과 합쳐서 새집으로 이사을 하면서도 가려워 해서 집을 고치면서 안좋은 건축자재나 화학제품으로 아토피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밭도서관에서 노인복지 책을 빌려서 읽으니 노인들의 성에 대해서도 이야기을 했다.
어머니가 건강체험관을 갔다가 어느 아저씨을 만났다고이야기했던 생각도 나고 그전에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집도 고쳐주고 엄마가 아프니까 약도 사다주고 했다는 생각이 나서 다른 생각도 했지만 조심스러웠다.
요사이 어머니가 거실에서 윗옷을 벗고계셔서 왜 그런가 보았더니 동생에 의하면 피부가 가려워서 약을 발랐다는 것이다. 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중고 옷가게에서 가디건도 사다드리고 겨울을 준비해서 솜으로 누빈 지누시라는 것을 사다드렷더니 여동생이 필요없다고 가져가란다.그옷은 가운처럼 앞에서 여미기만 해도 되어 입고 벗기에 편하다.
그전에 어머니에게 속옷을 사다드렸는데 어머니가 그옷을 어떻게 했는지 집에서 브래지어도 안하고 거실의자에 앉아계신다. 그렇게 여동생이 큰소리을 치지 어머니는 얼이 나간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는 여동생이 없을 때 왔다가라고 하시고 내가 무슨 말을 할려고 하면 다 듣기 싫다고 가라고 하신다.
피부가 가려우면 밤에 자기가 힘이든다. 전지장판을 따스하게 해 놓으셨다면 잠자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고 불을 켜놓아서 여동생이 자신도 잠을 못잤다면 여동생이 어머니을 잘 돌보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잠을 잘때 전기장판을 칠단까지 해놓고 뜨끈뜨끈하게 하고 이불을 다 차고 자면 춥다고 웅크리고 자신다. 그러면 12시 넘어서 내가 어머니 자는 것을 보면서 이불을 다시 덮어드리고 어머니에게 전기장판을 좀 낮게 하고 자라고 말을 했었다.
피부가 가려우면 전기장판을 끄거나 해서 가려움증을 덜느끼게 할수가 있다.어머니가 두려우니까 밤중에 불을 커두는것 아닌가?나이가 드셨으니 자신이 빨리 죽어야지 말은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혼자서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이들도 무서우면 잠을 못자고 형광등을 잠이 들기전까지 커달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 여동생은 어디서 자는지 모르겟지만 잠을 못잔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어머니는 잠을 청하기전에 따스한 우유을 주기도 했지만 잠을 못자서 그 다음날은 혈압이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언제 죽을 지 모르니 내가 잠이 들면 내가 자는 것을 돌봐달라라고 해서 집에 서 딸을 재우고 어머니가 자는 것을 돌보고 열두시넘어서 한시가 다되어 자기도 하고 아침에 밥을 할때는 아니면 새벽에 잠에서 깨면 엄마방을 한 번 들어다 보고 했다
그런데 여동생은 어머니가 윗옷을 벗고 있고 밤에 옷을 벗는것을 이해을 못하고 미친것아닌가 선망이 왔다고 난리다..
그리고 지난주에 가니 어머니 헤모글로빈 주사을 갑자기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 해서 선지해장국등을 먹어야겠다고 했다. 아니 동네시장에서 선지을 사다가 선지해장국을 끓여먹으라고 했던가?
갑자기 선병원에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생뚱맞게 몇년전에는 내가 어머니을 모시고 선병원에 가서 진료을 받고 오면서 선병원근처에서 어머니와 식사을 하곤 했다. 그런데 선병원 주위에도 어른신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하는 음식점이 별로 없다,.간단히 요기할 죽집도 없고 맛있는 국수집도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 이빨이 안좋아서 질긴 고기는 먹기 힘이 든다.
어머니가 혈액뭔가로 진료을 받아야 한다고 ....동생도 어머니가 병원을 간다고이야기을 했다. 평소에 미역국과 선지해장국을 어머니에게 끓여주면 좋았을 것 아닌가?
어미니가 메르스때 가슴수술인가을 했는데 막내남동생이 어머니 미역국을 잘 끓여주라고 했다.
나는 미역국을 열심히 끓였고 딸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때에 맞춰서 미역국을 끓였다.여자는 미역국을 잘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 음식은 보약이라고 했다. 보약을 안먹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선병원에 갔더니 새벽여섯시에 환자 입원실 면회도 안되고 병원 호실 전화도 안된다고 한다. 여동생도 어머니도 전화을 받지 않았다. 병원에 영상통화할 수 있는 전화가 각 호실에 비치되면 좋을 것 같다.
남동생도 전화을 거니 전화가 안되었다.여섯시가 넘었는데 ....어머니는 요양원은 안간다고 하셨다.그래서 나는 생각다 못해 어머니을 동네 주간보호센터에 보내자고 했는데 동생들은 가보니 안좋다고 요양보호사을 집에 다시 들였다.
요양보호사는 청소만 대수간 하고 이야기 상대하고 죽도 못끓이고 반찬도 못하고 칼국수도 할 줄 모르고 김치도 담질 못한다고한다. 요양보호사가 집에 도착해서 간단한 따스한 음식을 준비해서 어르신들에게 주면 좋을 것같다.
요양보호사들이 은행에 가서 돈심부름도하면서 노인들과 문제도 일으킬수도 있지만 먼저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에 앞서 가정일을 돌보느라 경력단절이 된 여성들에게 무시험으로 요양보호사일을 하게 하고 일차 이차 보수교육을 진행했으면 한다.
일년에 상반기 하반기로 하루씩 요양 보호사에 대한 간호와 영양식 준비등에 대한 교육을 회비을 받고 진행했으면 한다..
경력단절한 애기을 보던 여성이나 어르신들을 돌본 경력단절의 남녀들을 위해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애기을 돌본 사람이 누워있는 노인의 똥을 치운다. 할아버지을 캐어한 경험이 있는 남자중장년들이 할아버지들의 대소변, 산책, 말벗을 하는등..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서 집안일을 도우면서 말벗을 구하는 노인을 캐어할 분, 아니면 노인의 병을 전문으로 캐어할 간병인인지 구분해서 요양보호사을 신청하고 보수교육도 진행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 새벽에 택시을 타고 어머니가 입원한 선병원에 갔다가 면회을 거절당하고 입원실 545호에 전화도 안된다고 해서 몇자 적는다. 노인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공동입원실에 입원해서 커튼을 치우고 한병실에 한명의 간병인이 있어서 여러명의 노인들의 상태을 낮에 살피었으면 한다..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노인인구는 많아지는데 자라나는 우리의 자식세대들도 돌봐야 할 것이 아닌가?
내딸은 어려서 울면서 이야기 했다. 할머니에게는 이모, 삼촌, 한해언니.혜인이 언니, 덕환이 오빠가 있지만 나는 누가 있냐고 엄마가 나을 신경써주야 하지 않냐고 ...
노인과 아이의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아이의 기을 살리는 것, 아직 피지도 못한 꽃을 피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들을 위해 몇자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