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운영하는 아사드게이트 홀트컬처 너 저리센터

랄삭(빨간 시금치), 모리츠(고추), 베군(동그란 가지), 파파야, 망고

by 박향선

우리나라에는 시골에 농촌지도소가 각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도시을 포함에 각 디스트릭 등지에 원예센터 즉 영어를 방글라로 표기한 너저리센타 즉 육묘 센터가 곳곳에 있다.


방글라데시 국가의 정식 명칭은 방글라데시 인민주의 공화국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설 원예센터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너저리센타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아사드게이트 홀트컬처 너저리센타는 코코넛나무가 울타리를 이룬 곳으로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한 곳이다. 센터에는 가로 1m 세로 3m 정도로 흙바닥에 벽돌로 울타리를 친 육묘공간을 만들고 흙을 채운 공간에 2월에서 3월에 채소 씨앗을 뿌려 10cm 정도 자라면 떡잎이 난 육묘를 팔았다. 랄삭, 모리츠(고추), 베군(가지), 파파야 등을 2-3 다카에 팔았다. 육묘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주었다.

각 지방의 원예센터에서는 가끔씩 트럭이 올라왔다. 방글라데시의 차 외장에 화려한 그림이나 글씨가 쓰여있다. 글씨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등 코란의 경구를 아랍어로 적어놓은 차가 많았다. 지방의 원예센터에서 올라온 트럭에는 망고 묘목이나 코코넛 묘목, 리치묘목, 구아버 묘목등이 있었다.


원예센터에는 커다란 망고나무가 있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 원예센터에서 일하는 말릭들이 그 아래에서 휴식을 즐기고 루도라는 게임을 하기도 하고 휴식시간에 카드놀이인 포카를 하기도 했다. 나는 포카를 잘 몰라서 그냥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센터에 사무실은 울타리를 한 참 걸어들어와야 있었다. 사무실 건물에는 작은 사무실과 그 옆은 창고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다. 내가 원예센터에 오피서 오더로 부임한 것은 12월이었다,


처음에는 방글라어를 잘못해서 사무실에서 아이사라는 오피 셔와 있으면서 방글라어를 배웠다. 그녀는 2-3살 정도의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 딸과 내가 말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방글라데시 서점에서 그림책에 쓰인 방글라책을 사서 원예센터에 가지고 가서 그녀에게 방글라를 배웠다.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는 원예센터가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아사드게이트 홀티컬 쳐 원예센타고 다른 하나는 부유층이 사는 동네인 바나니에 있는 바나니 원예센터였다. 소속은 다카시청이지만 오더는 농업성에서 내렸다. 대학을 나온 사람이 소장으로 있으면서 이 두 원예센터를 관장했었다.


소장은 주로 바나니 원예센터에 일하면서 가끔씩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 왔는데 일본 연수을 다녀온 사람으로 나만 보면 오겡끼데스까 하며 일본어를 했다.


나는 세 곳의 지방 원예센터에 방문했다. 한 곳은 탕가일이라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인도와 국경을 맞댄 방글라데시 서쪽지방으로 로빈드로 타고르가 살았다는 지역을 둘러보고 그곳의 원예센터에서 일한다는 일본협력대 JOCV도 만났다.


다른 한 군데 원예센터는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를 방문한 꾸밀라 지역의 원예센터 슈퍼바이저가 자신의 원예센터로 초대를 해서 혼자서 방글라시외버스를 타고 방문했다. 그곳에서 본 육묘장은 나무묘목포장이 너무 밀식재배되어 묘목들이 기다랗게만 자라고 잎이 약간 황화 현상이 있어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배수로를 만들 것을 제안했었다.


그분은 나에게 그지역의 박물관으로 안내을 했는데 그 박물관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상이 그 나라의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닌가? 혼자서 생각을 했다. 가야국의 왕비였던 허황옥이 인도사람이라고 했는데 뱅갈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을 하게 되고 부탄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서는 외교통상부에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외교사에 대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른 한 군데는 탕가일 센타로 공백상태였던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방글라데시 코디네이터가 부임해 오면서 내 근무 지을 탕가일로 옮기려고 해 그곳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서는 한국의 현대건설과 삼환기업이 함께 방글라데시의 꿈인 조무나 브리지를 건설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은 규모는 작았지만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는 없는 육묘장에 파란 비닐과 대나무로 만든 육묘장 덮개가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물론 육묘가 자라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말이다. 독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곳이라고 전해 들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많은 원예센터가 있어서 후배 단원들이 지방 원예센터에도 파견되었는지 참 궁금했다. 올해가 방글라데시 파견 30주년이 되는 해다. KOVA단체가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 모두의 힘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 한다. 그렇다. 자신이 다녀온 기관에 대한 홍보를 통해 자신의 발전과 상대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상생의 삶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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